하느님 나라를 바란다면 말씀 하나라도 끝까지 키워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이라도 새들이 깃들일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씨를 뿌려놓으면 그 씨가 저절로 자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농부들이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씨가 뿌려져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땅을 일궈야 하고 고랑을 파야 하고 물을 주어야 하고 병충해와 짐승, 잡초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열심히 신경 써 주면 씨는 씨 나름의 일을 해서 커다란 나무가 된다는 뜻입니다.
씨는 말씀을 상징합니다. 어떠한 한 말씀이 내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씨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좌우명’(motto)과 같습니다.
좌우명의 뜻은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혹은 나의 목표가 되는 좋은 글귀, 좋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한자 ‘좌우명’(座右銘)이 나온 유래는 이렇습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의 유명했던 환공의 묘당을 찾아가게 됩니다.
묘당에는 환공이 사용하던 책과 옷 등이 있었는데, 환공의 책상 옆에 기울어진 항아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술독에는 ‘좌우명’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좌우명은 “자리 오른쪽에 두고 마음을 새기던 술독”이란 뜻입니다.
공자가 집사에게 기울어진 좌우명이란 술독은 무엇 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집사는 말했습니다.
“이 기울어진 술독은 술을 담으면 제대로 섭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차면 조금씩 기울어져서 넘어지게 됩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시켜서 그 기울어진 술독에 술을 부어보았더니 정말 기울어졌던 술독이 바로 섰고
또 어느 정도 지나니 다시 기울어져서 술이 쏟아져버렸습니다.
공자는 크게 깨우침을 얻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문(공부)을 한다는 것은 이 술독과 같다. 배웠다고 교만하게 군다면 자신도 모르게 넘어지는 법이니 명심들 하라.
아마도 환공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해 책상 우편에 이 술독을 두고 좌우명이라 써 놓았을 것이다.”
공자도 같은 술독을 만들어 좌우명으로 써 둔 다음 책상 우편에 놓고 공부하면서도 겸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렇듯 ‘겸손’이라는 단어 하나만이라도 기억하려고 매번 노력한다면 분명 오랜 시간이 지나 그렇게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 거지가 누추한 모습으로 볼펜을 팔고 있었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이 길을 가다 돌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볼펜 한 자루 주세요. 얼마에요?”
사장님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거지는 “아…. 그냥 내키는 대로 주시면….”이라고 말합니다.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사장님이에요.
정당하게 볼펜을 팔아서 사업을 하는 사장입니다. 저도 가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저는 한 회사의 사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죠.
당신도 정당하게 볼펜을 팔아 돈을 받는 사장이고 지금 사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장이 볼펜의 값을 정확히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며 볼펜을 사고 돈을 놓고 갔습니다.
그 거지는 한참을 되뇝니다.
“사장? 내가? 사장이다. 그래 난 사장이야. 난 지금 장사를 하는 거야. 나는 사장이야.”
그리고 몇 년 후 그도 재기에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때의 그 사장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떨어진 말을 내가 키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이고 키우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말씀의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저는 ‘행복’이라는 말씀의 씨를 지금까지 키워오고 있습니다.
더 행복하기 위해 살아왔더니 지금의 저가 되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제 나무 그늘에서 쉬는 분들도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라는 씨앗으로 비롯된 하느님의 나라가 제 안에서 나름대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자라야 하지만 유일하게 잘한 일은 행복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첫 기억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 행복이란 단어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지금 보니 그 행복이라는 단어가 결국엔 세속-육신-마귀의 욕정을 이기고 사제가 되게 했으며 사제가 되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때 알던 행복이란 단어는 분명 지금 아는 행복이란 단어와 같지 않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지금까지 그 행복이란 씨를 나무로 키워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 주님께서 많은 씨를 뿌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일 수도 있고, 선교일 수도 있고, 감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은 은총이라는 작은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만 끝까지 키워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 누군가를 쉬게 해 줄 수 있는 하느님 나라가 자신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분은 헛되게 씨를 뿌리고 계신 것이 됩니다.
단 하나의 말씀의 씨앗이라도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내가 잘 키울 수 있다고 믿고 가장 훌륭한 나무로 키워보십시오.
그러면 가장 훌륭한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 세워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식물이 자라지만 실제로 그 많은 식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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