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살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2페니(약 20원)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해서 바로 차를 한 잔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값이 2페니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에 있던 2페니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내는 자신을 도둑으로 모느냐며 크게 화를 냈습니다.
이에 남편도 화를 냈고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고 심지어 상대의 집안을 들먹이며 싸움은 더 크게 번졌습니다.
결국,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원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집니다.
남편이 화를 참았거나 아내가 화를 참았다면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어차피 얼굴에 화가 난 것이 다 드러나는데 뭐하러 참느냐 할 것입니다.
혹은 내가 지금 화를 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우습게 볼 것이라고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위선이 아니냐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를 내야 화가 풀리는 게 아니냐고 합니다.
화를 참고만 있다가는 화병이 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성을 내는” 사람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밖으로 표출되면 재판을 받는 것입니다.
화를 표출하거나 어디다 분출해버린다면 정말 화가 가라앉을까요? 그렇다고 말한 학자가 프로이트입니다.
프로이트는 화라고 하는 감정을 마치 터지기 직전의 댐으로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씩 자꾸 흘려보내 주어야 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분노를 베개를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밟아서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분출하면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제임스라고 하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프로이트의 접근방식을 매우 위험하게 보았습니다.
화를 내면 더 화가 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의 방식은 오히려 더 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습니까?
1970년대 초 사회학자 머레이 스트라우스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부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한 그룹의 부부에게는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라고 했고 다른 부부들에게는 그런 감정을 삭이라고 했습니다.
부부의 폭력성은 감정을 드러낸 부부들이 더 심했습니다.
말이 점차 격해지며 몸싸움까지 갔던 것입니다.
즉, ‘프로이트: 제임스 = 0:1’이 되었습니다.
에브 에베덴 연구팀은 한 회사가 조만간 대량 해고를 할 것을 알고 3년 계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1년 만에 해고를 당해야 하는 이들을 면담했습니다.
한 그룹에게는 불만을 마음껏 표출하게 하는 질문을 하였고 다른 그룹에는 그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적대감을 조사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분노를 표출한 집단이 회사에 대한 더 큰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프로이트: 제임스 = 0:2’입니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분야에서도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제프리 골드스타인은 축구와 농구, 풋볼과 같은 경쟁하는 스포츠를 보며 마음껏 소리를 지른 사람들과
체조경기와 같은 소리지를 필요가 없는 경기를 본 두 그룹의 공격성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을 본 이들의 공격성이 더 높게 나왔습니다.
저도 로마에 있을 때 축구경기가 끝나고 관객들이 서로 싸워 심지어 사망사고가 잇따르는 것을 본지라
이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표출해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증가합니다.
결과는 ‘프로이트: 제임스 = 0:3’입니다.
[출처: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리처드 와이즈먼, 웅진 지식하우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은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냐는 믿음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내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그 사람은 다시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믿는 대로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몸이 망가지면 자신이 그런 존재라고 믿어버려 잘나가던 사업도 실패합니다.
미국의 한 해병대 장군은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거든 이불부터 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행동은 곧 나의 믿음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화를 내면 나는 화를 잘 내는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버린 이상 폭력도 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꾹 참더라도 화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이 화를 안 내는 사람으로 믿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는 조금 덜 화가 납니다.
그러니 화는 내는 것보다 삭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이기에 화내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덧붙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항상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복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화를 내면 찌푸려지게 되어 있는 부부에 보톡스를 했더니 화가 덜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화를 내니까 더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표현하는 것이 곧 내가 됩니다. 그러니 좋은 것은 표현하고 나쁜 것은 감춥시다.
화가 났다고 말하면 되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은 드러나게 하고 나쁜 감정은 삭입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믿읍시다.
그러면 화가 나야 할 때도 화가 안 나고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십시오.
결국,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 나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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