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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5-29 조회수 : 3146

자녀를 어른으로 대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흐름상 복음 묵상은 연중 제8주간 토요일로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다음 유다 지도자들이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 거냐는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한은 분명 하늘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들이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하나를 물으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한입니다. 
 
그들은 요한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다고 하면 그가 증언한 당신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말할 것을 알고
또 땅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면 군중에게 욕을 먹을 것 같아서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면 당신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인지 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유다 지도자들도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피를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냉혹하다시피 대하십니다.
 
자녀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내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사랑이고 자녀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우리나라 많은 부모들은 많은 경우에 자녀들을 끝까지 자신의 품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녀들도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없고 그렇다면 아기가 부모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듯 그 요구를 들어주다가
부모는 피가 마르고 맙니다. 
 
박애희 작가의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떠나간다』의 ‘모든 것을 주면 떠나버리는 사랑의 슬픈 법칙’이란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부모와 자녀의 이상한 법칙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오른편 맨 앞자리에 앉아계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분은 같은 동네에 사는지 무척 가까워 보였다.
“어무니, 그래서 결국 준겨?”
“아니, 그럼 어떻게? 죽는소리를 하는데!”
“아이고, 내가 안 된다고 했잖여. 봐봐. 이제 아드님이 찾아오는지.”
“그러게. 나도 영 안 돼 보이긴 해서 주긴 했는데, 이젠 통 연락이 없더라고.”
 
“그게, 그런 거여. 어무니. 부모는 돈이 힘이여! 그걸 미리 다 줘버리면 부모를 잊는다니까!”
“그래도, 갸가 마음은 여려.”
“아니, 마음이 여린데 어머니 돈 다 가져가 버린대?”
“지 사는 게 영 마뜩치 않으니까 그런 거지 뭐. 아니, 이번 한 번 만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안 줘.”
 
“아이고, 어무니도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디다 쓴데? 아니, 지난번엔 첫째한테도 다 퍼줬으면서….”
“어떻게 안 줘? 자식 앞에서 모진 부모가 어딨게? 아, 그라고 이제는 더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어.”
“아휴, 어머니가 우리 엄니였으면 좋컸네유. 아참 어머니 병원 가시는 길이라고 했죠? 무릎은 어떠신겨?”
                                   
[출처: 유튜브 채널, ‘책 읽는 다락방 J’] 
 
 
대화는 이어지지만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은 다 위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는 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돈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부모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자녀를 아직도 품에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품에 안긴 자식은 ‘모기’입니다. 
부모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세상에서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정서적으로 독립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똑같은 ‘어른’으로 대해야 합니다. 돈을 받을 자격이 있어야 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12살이면 부모는 자녀에게 유산까지 주고 모든 관계를 청산합니다.
자녀를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들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진리를 청하는 유다인들에게 ‘No!’ 하십니다. 당신에게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진실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 취급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이 취급은 어린이 때면 충분합니다.
어른 취급을 할 때 자녀도 부모를 어른으로 대하게 됩니다. 
 
결국, 자녀들을 정서적으로 독립시키지 않은 부모는 어떻게 될까요?
계속 젖을 찾고 젖이 나오지 않으면 젖꼭지를 물어버리는 아이처럼 됩니다.
부모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끝까지 주다가 죽는 것이 부모의 삶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녀에게 좋지 않습니다.
자녀를 영원한 어린이로 만들어버리고 결국엔 다 주어도 자녀는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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