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사람에게 상을 줄 수는 없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에 대한 예고 다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하느냐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주실 영광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무엇이든 당신 때문에 버릴 수 있다면 그 백 배의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 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블랙홀에 상장을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먼저 버려서 또 다른 자신인 하느님을 선물로 받지 못한 상태라면 그 사람은 무엇을 버리든 버린 것이 아닙니다.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니 버린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버린 것에 대한 상이 무의미해집니다.
연예계에서는 소위 ‘배우 병’이란 것이 있습니다.
유재석 씨는 예능 촬영 도중 정준하 씨에게 “배우병 걸렸다. 자기가 배우인 줄 안다.”라며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준하 씨가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무려 5명이나 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대한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배우 병’이란 개그맨, 가수, 배우 중에서 배우들이 다른 직업의 연예인을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거의 매년 나오는 뉴스이지만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유재석 씨가 ‘TV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상을 받으러 나갈 때에 동료 개그맨들을 제외하고는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상소감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더 싸늘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이 상을 받을 때는 모든 배우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물론 수상소감을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자리에 앉지 않고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배우 병’이라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저는 왜 배우들이 그런 거만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일부러 그렇게 다른 연예인들과 급을 두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개그맨이나 가수들은 뼛속까지 개그맨, 뼛속까지 가수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은 개그맨들이나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남을 즐겁게 해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사랑을 위해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직업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배우들도 촬영장에서는 말 그대로 연기로 자신을 바칩니다. 영화를 보는 이를 위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 연기는 일상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만약 미친 사람 연기를 하거나 살인자를 연기하는데 본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따라서 연기할 때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그 배역에 내어놓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관객을 위해 카메라가 찍을 때만 연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꺼지면 자기 자리로 돌아옵니다. 자기를 지키려 하는 마음이 강한 것입니다. 직업상 자기 자신을 온전히 버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하지 않으면 다른 연예인들보다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교만’인데, 나로 돌아오려는 마음이 강할 수밖에 없어서 자신들도 모르게 거만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봉헌하면 100배의 상은 분명히 받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봉헌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상을 주려고 해도 자기가 살아있다면 마치 뒷짐 진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주는 즉시 땅에 떨어집니다. 겸손은 상을 받을 때 내어놓는 하늘을 향한 두 손과 같습니다.
오늘은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입니다.
교황은 한 수녀원에 성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필립보 네리를 감시관으로 파견합니다. 그 성녀는 환시를 보고 많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립보 네리는 그 성인이 상을 받을 손이 있는지부터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인으로 변장하고 수녀원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폭우가 쏟아져 온몸은 비로 젖고 신발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수녀원에 도착한 필립보 네리는 그 수녀를 오라고 하여 자신의 신발을 벗기고 발을 씻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녀는 깜짝 놀라며 자기에게 어떻게 그런 천한 일을 시키느냐고 팔짝 뛰었습니다. 필립보 네리는 교황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수녀에 대해서는 더는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수녀원에는 성녀가 없습니다.”
우리는 연기로 우리 자신을 봉헌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에게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남을 행복하게 하려는데 진정으로 종이 되려는 마음이 없다면 선행을 하더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유재석 씨는 무명시절에 만약 자기가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해졌다고 거만해진다면 세상 모든 고통을 다 주셔도 달게 받겠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 절실함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나라에서 연기를 잘한다고 소문난 어떤 배우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유명해지자 술좌석에서 후배 배우들에게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배우에 대한 좋아하는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진짜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또 만약 그렇다면 다시 겸손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항상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사제로 하는 모든 이런 일들이 연기가 아니기를 바라고 뼛속까지 내어주는 군고구마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바친 모든 것들의 100배의 상을 받을 손을 겸손하게 무릎 꿇고 내어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뒷짐 진 사람에게 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를 봉헌하지 못한 사람에게 ‘자기 것’을 봉헌한 것에 대한 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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