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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25 조회수 : 3089

버릴 수 없는 것은 즐길 수 없고, 즐길 수 없는 것은 잃게 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던 부자가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였더니 부자가 슬픈 마음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정말 예수님 때문에 버리면 백 배를 받게 될까요? 외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과 재산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많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버려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백 배로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것을 버리고 사제가 되면 정말 많은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노력해서 그것을 쟁취하고 가져서 누리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이미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트레스받는 것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려운 것을 즐길 수 있을까요?


EBS 포커스, ‘집착’에 여자 친구에게 집착해서 스토커가 되어버린 한 청년이 사례로 나옵니다.


처음 2년은 여자 친구와 좋았습니다. 막일해서 일 년에 버는 수백만 원을 다 여자 친구를 위해 썼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을 수 없어서 여자 친구에게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메일과 문자를 보내고 여자 친구 SNS에 자신과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나중엔 찾아가서 위협도 했습니다. 여자 친구가 신고해서 경찰서에 갔다가 결국엔 군대에 억지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군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빨리 제대를 할 수밖에 없고 지금도 여전히 여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한 여자가 나왔는데 자신이 버는 모든 돈을 자기 외모를 가꾸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카지노에서 딜러가 되고 싶었는데 그냥 재미로 시험을 함께 치르러 간 친구는 붙고 자신은 떨어진 것이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 믿고 외모를 가꾸는데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착에 관한 사례를 예로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집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집착은 사랑받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을 되찾아 줄 어떤 것을 지나치게 소유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버릴 수 없는 것은 즐길 수 없습니다. 집착하는 것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즐기지도 못하고 잃고 맙니다. 에밀레종과 같을 것입니다. 자꾸 종을 쳐서 망가질까 두려워 박물관에 가져다 놓았는데 종을 치지 않으니 진짜 종이 갈라져 더는 종을 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즐긴다는 것은 무엇이든 소진된다는 뜻입니다. 소진되어도 되는 것만 즐길 수 있습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떠나보낼 수 있을 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애인도 마찬가지고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명상 센터에서 한 프랑스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 여성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일곱 살에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녀야 해서 마르타는 외할머니에게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습니다.


마르타는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시아 문학을 전공해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부족함 없이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혼자서 일주일 동안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마르타는 남편에게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고 또 누구도 그녀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떠나야 했고 자신의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마르타의 어머니가 와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녀는 명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돌연 자신을 떠남으로써 자기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강박감 때문에 그녀가 먼저 결별을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출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더숲]


마르타란 자매는 왜 남편을 잃게 되었을까요? 남편을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유하고 싶어지면 동시에 잃게 될 두려움이 커집니다. 잃게 될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을 즐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즐길 수는 없고 두려움만 주는 그것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요? 자기 스스로 그것을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가졌다고 믿는 것마저 잃고 마는 것입니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즐기는 사람이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재물을 즐기지 못하면 결국 가진 것을 잃게 됩니다. 자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믿는 자에게서 떠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재물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누리지 않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누리려면 모든 것에서 가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집착하는 것을 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가난하도록 권고하시는 이유는 모든 것을 누리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누릴 때는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합니다.


우리도 모든 것의 100배를 가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이미 100배를 가진 것처럼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100배가 많아지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한 번에 다 잃습니다. 다만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삶을 누리십시오. 더 가지면 행복하겠다고 믿으면 그것도 잃게 되고 지금 가진 것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버려야 누릴 수 있습니다. 가지려 하는 것은 누릴 수 없습니다. 누릴 수 없는 것은 결국 잃게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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