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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24 조회수 : 2652

꼼꼼한 직장 상사가 있었습니다. 특히 보고서를 들고 가면 그 꼼꼼함은 절정에 다다릅니다. 한참을 보고서에 집중하던 상사는 잠시 뒤 지적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보고서의 내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의 오탈자를 기가 막히게 찾아서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탈자가 세 개나 있어. 정신 차려야지.”


이 상사 밑에 있는 직원들은 아마도 보고서의 내용보다 오탈자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보고서의 내용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오탈자 교정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다른 상사 밑의 직원들은 어떨까요? 그 직원들은 보고서의 내용, 참신한 아이디어에만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탈자가 있는 것은 ‘그럴 수 있지 뭐.’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그룹 중에 어느 그룹이 더 높은 성장을 보일까요? 당연히 오탈자보다 내용에 신경 쓰는 그룹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율법과 이 율법의 준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정말로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데 죽음 직전까지도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어떻게든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더 중요한 것은 복수의 차원에서 그들이 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구원이라는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고는 어머니에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맡기시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홀로 되신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주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미움, 복수, 욕심…. 어쩌면 모두가 순간의 만족만을 줄 뿐이었습니다. 미워하는 것도, 복수하는 것도, 내 욕심을 키워나가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쫓아서 가야 함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어머니 성모님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의 구분


텔레비전에 한 정치인이 나와서 말을 합니다. 이 정치인을 본 누군가가 “나는 저 사람이 미워 죽겠어.”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방송을 통해 본 모습만으로 “밉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움이 아닙니다.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은 모두 잘 아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까운 사이입니다. 배우자, 가족, 친구….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가까운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가까운 형제자매가 미워하는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을 향한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어야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기에 또 사랑의 대상도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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