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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21 조회수 : 2120

한 외국인 연구자가 각 나라의 1분당 평균 걸음 수를 조사했습니다. 미국은 분당 25걸음을, 영국은 분당 29걸음을, 일본은 평균 35걸음을 걷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의 평균 걸음 수는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1분에 평균 56걸음을 걷는다고 합니다. 거의 1초에 한 걸음을 걷는 셈입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빠른 성취를 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가 정말로 빠르게 발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빨리빨리’ 문화는 빠르게 실망하고 빠르게 절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너무 급하게 원하는 결과를 구하려고 하다가 놓치는 것도 너무나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빠르게 서두르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다시 한번 생각하며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으로, 예수님의 수난 당시에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한 일을 언급하지도 또 그간의 보여주었던 실망스러운 모습을 야단치시지도 않으시면서 온화하게 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합니다. 즉, 베드로가 세 번의 믿음 고백을 하게끔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착한 목자에 의해 지위를 회복하며, 자신의 뒤를 따르는 사목자들과 함께 자신의 양들을 먹이도록 불리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세 번이나 던지셨을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계속해서 이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막연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주님을 떠올리며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베드로가 들었던 주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나를 따라라.”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닌, 사랑의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칙을 좇기보다 주님의 원칙을 좇아야 합니다.


급하고 막연하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 마시고, 왜 주님을 사랑하고 함께 해야 하는지를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죽음은?


갑곶성지에는 ‘천국의 문’ 봉안당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시는 안치식을 거의 매일 하면서, 죽음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첫째, 죽음은 힘든 이별이며 커다란 상실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특히 사랑했던 만큼 그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컷 울고 애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지 70년이 된, 80대의 할아버지께서도 이곳으로 부모님 유해를 개장하면서 펑펑 우십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도 죽음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둘째, 죽음은 실패가 아닙니다.


질병, 노화로 인한 죽음이 의료적 실패나 기능불량이 아닙니다. 삶이 죽음에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이 죽음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셋째,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됩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계속된 질문 속에 지금을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죽음은 어떠하신지요?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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