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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5-19 조회수 : 2959

5월19일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요한 17,11ㄷ-19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뿐
 
 
오늘 복음도 역시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아버지께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신다고 하면서도 제자들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이든 ‘성령’으로만 거룩해집니다. 
성령, 사랑, 생명, 신성, 영광 등과 오늘 복음의 ‘이름’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거룩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세상의 고통 속에서도 기쁠 수 있을까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세상’은 마치 지옥과 같은 뜻입니다. 
이 지옥으로 예수님께서 먼저 뛰어드셔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면 동시에 기쁠 수 있을까요?
만약 언젠가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감옥생활이 삶의 전부라면 그 속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타인을 괴롭히고
자신을 파괴하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받아 갇혀 있는 형을 구하기 위해 동생이 죄를 짓고 감옥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동생은 온몸에 자신만 해석할 수 있는 문신을 새깁니다.
그 문신 안에 감옥의 지도와 탈출할 모든 방법이 들어있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권력의 다툼이 치열하고 이러나저러나 고통뿐입니다. 
모두가 탈출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고통입니다.
어디든 원하는 때에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만약 물에 빠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수영하는 것이고,  나올 수 없다면 익사 직전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감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나올 수 있다면 간수이고 그렇지 못하면 수인입니다. 
수인인 상태에서는 아무리 행복을 찾으려 하더라도 자신도 고통이고 남도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여기서 ‘쇼생크 탈출’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직 주인공만이 탈출할 구멍을 팠습니다.
물론 그 주인공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음악을 듣고 수인들도 음악을 듣게 해 주고 싶습니다. 
 
한 번만 맞고 독방에 며칠 머무르면 그만입니다.
아무도 그런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지만, 주인공은 즐겁게 음악을 들으며 마당의 수인들에게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줍니다.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감옥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뿐입니다.
그러나 이 감옥에서 나가는 법을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조금 더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찍어누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영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영을 즐기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조금 힘이 들지만, 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왜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쁨’을 강조하시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도 역시 감옥에서 생활하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갈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목숨을 잃을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고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길이 몸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시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기뻐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신학생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 공부를 못 하거나 아니면 사고를 쳐서 신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입니다.
규율이 매우 엄격합니다. 그런데 저는 1학년 때부터 몰래 술을 마셨고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다만 쫓겨나도 성 프란치스코처럼 살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와 함께 술을 마신 동기가 방에서 토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술도 마셨겠다 그 친구의 토한 것을 치워주었습니다.
그 전에 제가 세면실에서 소리를 좀 크게 질러서 학생 지도 신부님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사실 그 신학생이 저 때문에도 많이 마신 이유가 있는데, 그리고 소리를 지른 것도 저인데, 그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소공동체는 1달간 외출 금지를 당했고 저는 친구가 토한 것을 치워주는 약간 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만약 제가 술을 마신 것 때문에 찍혀서 쫓겨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 토한 것을 치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입니다.
만약 신학교가 나갈 수도 없고 나가면 큰일 나는 감옥과 같은 곳이라고 여겼다면 남을 도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탈출해 그리스도처럼 아버지께 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큰 시련을 주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타인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시련 가운데서도 구원의 확신으로 항상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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