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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5-18 조회수 : 2870

자녀에게도 남편에게도 사랑받는 엄마가 되려면?


오늘 복음부터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기도 내용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영광’을 청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영광스럽게 했으니 이제 당신이 나를 영광스럽게 해 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영광’은 ‘이름을 빛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름’은 ‘본성’을 의미하기에 ‘사랑해 달라!’고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사랑받는 것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으시는 근거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알려주었다고 하시며 그래서 제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지만 수고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가족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듯 보입니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것들로 자녀들을 키우며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알려주어 아버지를 공경하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알려주지 않고 자신 혼자 자녀를 키우려는 어머니는 분명 자녀를 자기 행복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녀에게 원망을 듣는 날이 옵니다. ​자녀가 찾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전국 1등을 하라고 골프채로 아들을 때려 아들이 결국엔 어머니에게 칼을 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사랑받으려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엄마 혼자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자녀의 정체성도 엄마 혼자 알려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신비의 일부입니다. 내 뜻으로 자녀를 키우려다가는 항상 양쪽으로부터 칼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얼어 죽어가면서도 아기를 살리려고 자신의 겉옷으로 아이를 감싸고 죽은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아 키운 미군이, 다 성장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때 아이는 어머니 무덤에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덮으며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미군이 아이를 어머니에게 소개해주지 않고 어머니의 사랑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아무리 사랑하며 살라고 양아버지가 가르쳐도 그 말을 따르지 못합니다. 왜 자신을 미국까지 데려왔느냐며 원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양아버지가 사랑받는 길은 아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랑의 소명을 일깨우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께로 이끌어주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쪽으로부터 다 사랑받는 길입니다.

 

티베트 고원에 우뚝 솟은 카일라스산은 시바 신이 산다고 믿어온 만년설이 덮인 신비의 산입니다. 시바 신은 주로 명상과 고행으로 지내기 때문에 그의 아내 파르바티는 늘 춥고 무료했습니다.

하루는 무척 심심해진 파르바티가 시바 신에게 졸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 줘요. 나만을 위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 세상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여야만 해요.”


그러자 시바 신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파르바티만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 긴급 보고할 것이 있어서 문 앞에 있었던 신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신관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치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인 양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또한 파르바티의 시녀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파르바티의 머리를 빗겨주며 자신이 남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파르바티는 폭풍을 일으키며 시바 신에게 달려가 화를 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약속했잖아요. 내 시녀까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더군요!”


시바 신은 시녀에게 그 이야기를 누가 들려주었느냐고 물었고 시녀는 겁에 질려 남편인 신관에게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신관이 호출되어 사정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네가 몰래 들은 이야기인 것을 솔직히 아내에게 말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에게 받은 이야기를 인간의 것으로 여겨 전한 것은 큰 벌을 받아 마땅하다. 너는 온 세상을 다니며 네가 들은 이야기를 다 전하여라.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에게서 왔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기 전에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다.”

[참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더숲]

 

자녀가 찾는 이야기는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해답을 줄 진리입니다.

그것을 아버지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자신만이 아이의 원천인 듯이 말해준다면 아이는 혼동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고 결국 삶이 힘들어질 때는 그 탓을 어머니에게 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아버지의 존재와 아버지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아버지를 향하게 하고 아버지를 닮게 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아버지가 닮아서는 안 되는 모습이라면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끌면 됩니다.    자신이 하느님인 양 아이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소명을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머리카락 하나도 만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창조자인 양 자녀에게 삶의 방향을 정해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모두에게 원망을 사는 길이 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거든 예수님처럼 자녀에게 아버지를 알려주고 영광스럽게 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에게도 자녀에게도 사랑받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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