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회복? 관계는 ‘뜻’에 의해 저절로 맺어진다
오늘도 역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말씀의 연장선상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을 수액처럼 받아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라고 하셨고, 결국 계명을 따름이 머물 곳을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소는 그 장소가 요구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품 안, 즉 하느님 나라에 머물려면 그분이 요구하시는 계명, 곧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뜻’, ‘계명’은 자신이 머물 곳을 선택하게 되고 그 머무는 곳에서 받는 양식, 즉 특혜를 입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것에서 더 나아가 ‘친구’가 생기게 만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늦게 들어갔지만, 일찍 들어간 친구 신부가 있었기에 그 동기들이 선배들이면서 또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친구를 사귀게 만드는 것은 모든 하느님 자녀의 친구인 그리스도와 친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강의 부탁을 받았는데 제목이 ‘관계회복’과 관련되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불행한 까닭이 나와 관계가 잘 안 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과 관계가 안 되는 이들, 예를 들면 유다 지도자들이나 가리옷 유다와 같은 이들과 끝까지 관계회복을 하기 위해 노력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신이 싫다고 끝까지 고집부린다면 그분은 놓아주십니다.
꼭 나와 관계가 잘 유지되지 않는다고 그 사람과 관계회복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계는 내 의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성으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모기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고 좋은 관계가 맺어질까요? 행복을 위해 모기가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잠시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영화 ‘어벤저스’는 12년간 23편의 작업을 통해 방대한 스케일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정립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속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어벤저스의 핵심 히어로는 ‘아이언맨’입니다. 그리고 어벤저스가 물리쳐야 했던 최대의 적은 타노스였습니다. 타노스는 지나치게 많은 생명체로 우주가 가득 차버려 우주 존망이 위험해졌기 때문에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죽게 만드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합니다. 어벤저스 팀도 절반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이언맨의 희생으로 타노스가 죽고, 죽었던 모든 생명체가 다시 살아납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라는 당신 팀을 꾸리시고 당신이 사탄의 우두머리를 처치하시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흥행하는 모든 영화의 기반은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안 들어간 영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어벤저스 팀의 공공의 적이 없을 때는 어떨까요? 가장 큰 적은 적이 아닌 것처럼 그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어벤저스 : 시빌워’는 같은 팀끼리 싸우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공공의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 팀원이 친구가 아닌 적으로 바뀌어 같은 팀끼리 싸움과 분열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디에서는 발생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것은 친구가 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아닙니다. 공공의 적이고 공공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오직 사랑만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영화 ‘오블리비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계인에게 복제된 인간임을 모르고 지구인을 공격하고 있었던 주인공 잭 하퍼는 결국 자신이 적을 위해 일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적이었던 이들이 친구가 되고 친구였던 이들이 적이 됩니다. 이전 아내가 진짜 아내가 되고 지금의 아내는 이제 자신을 죽이려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에 따라 친구도 원수가 되고 원수도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굳이 사이가 안 좋아진 사람과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본성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모기는 모기끼리, 원숭이는 원숭이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하느님 자녀는 하느님 자녀끼리 모이게 되고 친구가 됩니다.
사람이 모기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집착일 뿐입니다. 어느 날 모기가 사람처럼 된다면 나와 친구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 자녀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 하기만 한다면 어느새 주위에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모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과 함께 세상의 악과 싸워나가면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결국 그것을 반대하는 것들과의 싸움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 5,19)
세상의 악의 세력과 싸워 영혼을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친구들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우두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 각자에게 당신의 일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싸움을 같이하고 있다면 교회는 분열되지 않고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친구가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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