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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5-03 조회수 : 3813

5월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코린토 1서 15,1-8
요한 14,6-14
 
우리는 “나를 본 것이 곧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청합니다. 
이는 “저는 사랑을 아직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는 말과 같습니다. 사랑하면 닮습니다. 
닮는 이유는 사랑하면 서로의 존재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떤 자매가 다른 사람이 눈치챌 정도로 저의 말투를 따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저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기분 좋았던 적이 있습니다. 
인간도 그럴진대 하느님은 그 완전한 자기 교환으로 아버지가 아드님을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보면 아드님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하면 닮아가고 그 닮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닮음이 얼마나 관계에서 중요한지 잘 표현해줍니다. 
M은 노총각으로서 회사 월급으로 문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자신이 생식능력을 잃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사를 찾아옵니다.
의사는 생식능력이 사라졌음을 알았지만, 희망을 주기 위해 가능한 것처럼 말해줍니다. 
그렇게 M은 혼인하게 됩니다. 
 
혼인 후 아내가 임신하였습니다. 
그러자 M은 다시 의심에 빠져듭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의사를 찾아왔지만 주저하다 검사를 받지 못합니다.
며칠 후 M은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이상이 없다고 하면서 의사에게 와서 말합니다.
고민에 빠져있던 의사는 짐을 벗은 느낌입니다. 물론 의사는 M이 검사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생식능력을 잃은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후일에 M은 아기가 아파서 다시 그 의사를 찾아옵니다.
M은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아들과 자기가 닮은 데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가운뎃발가락이 긴데 아들의 가운데 발가락도 길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는 얼굴도 닮은 것 같다고 말해줍니다. 
 
M이 아들을 사랑하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은 첫 번째로 자신에게 생식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했고, 두 번째로 아들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이 곧 생식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자신을 닮았다면 그것 자체가 자신에게 영광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 안에서 당신과 닮은 것을 하나라도 발견하려고 우리를 살펴볼 것입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부자 아빠는 기요사키가 따른 친구의 아버지를 말합니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가난한 아버지를 닮지 않고 친구의 부자 아빠를 닮았음을 이 책에서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기뻐할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바로 로버트 기요사키가 닮고자 했던 부자 친구의 아빠일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기요사키는 “나를 본 것이 곧 부자 아빠를 본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나를 본 것이 곧 누구를 본 것인가?”라고 생각할 때 나는 내가 닮으려는 사람, 곧 내가 영광을 주려고 하는 이를 위해 사는 것이 드러납니다. 나 자신에게 한 번 물어봅시다.
“나를 본 것이 곧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는,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아직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분의 자녀라고 자신이 여긴다면
당당히 “내가 곧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만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릴 말은 없습니다. 
내가 그분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계시이고 선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나를 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보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녀를 나를 향하여 나아오게 한 것이지 그리스도를 향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표지판이 자신을 향하여 차가 달려오게 만든다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웃는 미소는 아버지를 닮았고 우리의 성격은 어머니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닮은 누군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았고 우리를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고백할 수 있다면 “나를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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