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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22 조회수 : 3630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 태중에서 생존한다 
 
 
오늘도 성체성사에 관한 예수님 설교의 일부분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역시 이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그리스도를 어머니처럼’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머니라면 아버지는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는 어머니의 살을 먹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12)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것이 하늘나라의 비유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는 일은 하늘나라에서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는 일의 비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났더라도 부모의 사랑과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기에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부모의 희생과 모범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자녀로 살려면 하느님의 희생과 모범이 필요한데, 하느님의 희생은 당신의 살과 피로,
하느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모범으로 우리게 주어졌습니다.
 
이 지상에서부터 우리는 어머니로 상징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살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은 이 지상에서도 어머니의 살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나오면 엄마에게 자유로워질까요?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마치 아기가 엄마 태중에서 엄마의 영양분을 먹고, 또 태어나서도 엄마 품에서 젖을 먹는 것처럼 엄마의 살과 피를 통해 들어옵니다.
이것이 태중에서부터 단절되면 태어나서도 여전히 그 태중의 배고픔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실 어떤 누구도 어머니의 태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경희 루시아’ 수녀님의 강의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많은 사람이 칭찬하고 영광을 주어도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싫어하는 수녀님이 있다면 갖은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그 수녀님을 욕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자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이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을 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엄마는 언니만 사랑해!”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다른 수녀님과의 관계가 분명 어머니와의 관계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수녀님은 묵상을 더 깊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수녀님을 잉태했을 때 부산에서 살다가 인천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곳으로 남편만 믿고 왔을 때 어머니의 마음이 매우 불안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불안함을 먹고 살았고 태어난 후에도 아직도 그런 불안함에 싸여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그런 불안함 속에서 아기를 낙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태중에 있었던 아기는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습니까?
 
태어나서 그 불안함이 끝나면 모르겠지만 태어나서도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3살 때 부뚜막에 올라가 설거지를 하려 했고 빨래와 심부름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언니만을 사랑했습니다.
학교 갔다 왔을 때 어머니가 언니를 반기는 표정과 자신을 반기는 표정이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니는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니 태어나서도 사랑받습니다.
본래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태중에서부터 어머니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태중에서 벌어진 일이 태어나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성장해서도 여전히 어머니의 살과 피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묵상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한쪽 팔에, 수녀님을 다른 한쪽 팔에 꼭 안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어머니를 용서하고 그리스도 품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막혀있던 무덤의 돌이 굴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더니 얼굴도 사랑받을 준비가 된 얼굴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에게 미운 감정이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구걸하듯, 다른 수녀님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를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랑받고 싶다면 지금 내가 잉태된 어머니에게 이미 사랑받고 있어야 합니다.
 

 [출처: ‘희망기도로 내면 치유’, 김경희 루시아 수녀님, 유튜브 채널, ‘Bruce Lee’] 
 
 
육체의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태중에서 사랑받으면 됩니다.
그 사랑의 양식이 당신의 살과 피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그리스도의 태중에 잉태된 삶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그리고 천국에 태어날 최상의 태교가 이뤄집니다. 천상에서 태어났을 때는 진정 그분이 차려주는 밥상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 역시 그리스도의 살과 피일 것입니다.
어느 세상이든, 태중이든, 이 세상이든, 나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은 어머니의 살과 피입니다.
그리고 그 힘이 이웃을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은 받은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한 청년 자매님의 예를 들었습니다.
아기는 태중에 있을 때 아이를 떼라는 아버지의 말에 “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처가 세상에서도 살기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태어나도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어떤 피조물도 창조자가 아닌 이상 자력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누군가의 태중에서 영양분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랑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다면 다른 존재의 태중에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탄의 태중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리옷 유다는 성체를 영하면서도 사랑과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만약 하느님의 태중에 있다면 하느님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부모의 뜻과 반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은 당신 태중에 살라는 뜻입니다.
생명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받은 어머니의 살과 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엄마의 살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요한이 그리스도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 잉태되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생존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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