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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20 조회수 : 3360
현대인들에게 성체가 매력을 잃는 이유: 배부르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먹고 마시면 절대로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이 말씀은 육체의 양식을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배고픔은 무엇일까요? 영혼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개념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부어주시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받지 못하면 배고픔에 시달립니다. 
 
남들이 보면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을것 같은 어떤 자매님께서 밤마다 일어나 왠지 모를 공허함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피조물 안에서는 사랑이 솟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랑이고, 하느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영혼은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은 이 공허감을 육체적인 배고픔으로 착각하여 세상 것으로 채워 넣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배고픔은 영영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당신께 초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랜 시간 성체를 영해 온 사람들도 여전히 미사에 참례하기보다는 TV 미사도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동안 한 번도 성체가 그 사람을 배부르게 하거나 해갈시켜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육의 배고픔과 영의 배고픔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육으로 배부른 것이 영적으로도 배부른 것으로 착각합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려면 그래서 필연적으로 육의 배고픔을 추구해야 합니다.
육이 배부르면 자신이 배부르다고 여겨 예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 소심하고 뚱뚱해서 친구가 없었습니다.
이런 아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엄마는 서로 웃기는 경연으로 윌리엄스의 개그본능을 일깨웠습니다.
윌리엄스는 혼자 장난감으로 역할놀이를 하며 연기 능력과 함께 개그 능력도 키웠습니다.
덕분에 성장하면서 출연한 배역 그의 연기는 빛을 발했고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뇌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말은 어눌해졌고 순발력은 떨어졌습니다.
당연히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바닥을 치게 됩니다. 그에게 닥쳤던 병은 파킨슨과 치매였습니다.
그는 “이젠 웃기는 법을 잊어버렸어.”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찾는 사랑은 우리 마음까지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세상 것에서 찾다 보면 로빈 윌리엄스와 같이 가진 것을 잃는 고통을 견뎌낼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랑을 추구하는 이유는 영혼이 배고프기 때문인데 그것은 육체로 채워진다고 여기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는데 음식만 먹는 꼴입니다. 
 
주님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는 육체는 채워지지 않아도 영혼만 채워지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혼에 채워지는 사랑의 중요성을 알려면 육체의 필요를 끊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김혜자 씨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전쟁 난민을 위한 봉사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다 쓰러져가는 움막으로 들어갔을 때 흑인 여성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몸을 눌러보니 누르는 자리마다 역겨운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기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의사는 김혜자 씨와 몇 시간에 걸쳐 소독약으로 그녀의 몸을 닦고 고름을 제거해 주었습니다. 
 
이 일을 다 마쳤을 때 30대 중반의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치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그녀는 마지막에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신창이인 몸을 닦아주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의 괴로웠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빛이 나는 얼굴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김혜자 씨와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행복해요.”
                    
 [출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더숲] 
 
 
육체가 더는 제 역할을 할 수 없고 음식을 먹을 힘이 없을 때도 사람은 ‘사랑’에 목마르고 배고파합니다.
육체가 다 망가졌어도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와 영혼 중 어느 것을 먼저 채워야 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영혼을 채우면 행복해지고 그러면 그 채워준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것에 배부르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그 배부름이 자신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것을 알려면 육체를 그렇게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배부르려면 육체는 배고파야 하고, 영혼이 물을 마시려면 육체는 목말라야 합니다.
요즘 이런 절제의 덕이 사라져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을 당신께 초대하실 때 큰 느낌이 없는 것입니다. 
 
육체가 배고프고 목마를 때, 그래서 세상 것으로는 더는 채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가 사랑을 찾을 수 있을 때입니다.
성체가 나에게 매력이 있어지는 때는 세상으로부터는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음을 느낄 때임을 잊지 맙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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