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기적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
오늘은 요한복음의 5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를 듣습니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도 믿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필립보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필립보는 “당신께서 먹여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치 자신에게 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절대 못 한다는 의미로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조금 믿음이 있었던 사도는 안드레아입니다. 그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본 것으로 보아 불가능하다고만 하는 필립보보다는 믿음이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기적을 한 번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은 누구의 믿음으로 이뤄진 것일까요?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못 할 것이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오늘 복음으로 말하자면,
“저 장정만도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당신이 좀 먹여주시지요.”라고 당신이 먼저 청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일까요? 가장 완전한 믿음입니다.
그 어떤 기적도 본인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리스도께서 해주십니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행하셨다고 해도 그 믿음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성모 마리아께서 카나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많은 이들을 먹일 양식을 얻어내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수준의 믿음이 내가 곧 그리스도이기에 불가능이 없다는 최고의 수준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에 관한 사례를 찾다가 한 개신교 선교사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짧은 설교 내용 동안 어떻게 이렇게 맞는 말만 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옮겨봅니다.
오늘 기적을 행하라고 했을 때 제자들의 심정을 이입시켜보며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결국, 오늘 기적의 대상은 5천 명이라기보다는 제자들이었습니다.
“호주에 가서 말씀을 전할 일이 있었어요. 몇몇 교회를 다니는 가운데 많은 교회에서 부활에 대해서도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도 믿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서 보통은 제가 그렇게 안 하는데 가야 할 교회 목사님하고 아침 식사를 할 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분들에게 정말 하느님을 경외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 몸이 아프신 분들을 위해서
좀 치유 기도를 할까요?’ 했더니 목사님께서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저녁에 몸이 아프신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오늘 하느님께서 일해주시겠다는 그런 어떤 기대감이나 감동이 생기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기도는 없는 거로 하고 조용히 들어가자.’
집회 때 나와서 말씀을 전하고 나서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앞자리에 앉아계신 담임 목사님이 ‘아픈 사람들 다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 빨리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큰 소리로 무조건 기도하세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나오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믿음을 일깨워줄까?’ 했던 사람이었는데 보니까 제가요, 믿음이 없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관심이 나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솔직히 저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고백할 수 있는 게 있는데, 하느님은 이 믿음 없는 저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렸어요.
그날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역사하셔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제가 믿음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거대한 장벽. 이것이 없어지고 무너지고 길이 평탄케 되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도 믿음의 역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역사가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요, 여러분 안에 똬리 틀고 있는 ‘자기에 대한 관심, 내가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
어떻게든 나를 지켜야 한다는 집착’, 그것이 뿌리째 뽑혀서 바다로 던져지는 것. 그게 진짜 믿음의 기적이에요.
왜냐하면요, 나에 대해서 갇혀 있고, 나에 대한 관심이 나를 이끌어가잖아요?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 믿음의 역사를 향해서 한발을 떼지 못하게 돼요.
내가 어떻게 내일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내 앞길을 챙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게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그게 믿음이라는 거예요.”
[출처: ‘믿음에 대하여’, 이용규 선교사, ‘유튜브 CGNTV SOON, 3분 메시지’]
과감히 기적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기적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자아를 죽이는 참 기적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는 게 가장 완전한 기적입니다.
지금 은총의 통로로 쓰이는 내가 때가 묻어 막혀있는 것처럼 보여도 물이 많이, 그리고 오래 지나가면
그 더러운 오물은 물에 씻겨 깨끗하게 됩니다.
내가 이웃들에게 좋은 기적의 선물을 주려는 마음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보다 나에게 더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왜 5천 명을 먹이실 때 먼저 제자들을 시험했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누군가 치유의 기도나 병자 성사를 달라고 하면 저도 겁이 납니다.
치유가 되지 않으면 저의 믿음이 없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합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겸손해져서 좋고 하느님과 청한 사람은 안 좋습니다.
하느님은 그러니 당신과 청하는 이를 위해서라도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그렇게 치유의 기도는 결국 나를 깨끗하게 하고 치유합니다.
그러니 되든 되지 않든, 기적을 위해 나 자신을 내어놓읍시다.
이 용기가 나의 믿음을 완성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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