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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15 조회수 : 3072

진리를 믿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능력을 수반하지 않는 진리는 없기 때문에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의 결말입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믿어야 하고 그러면 하느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날 수 없을뿐더러 하느님 진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진리 안에는 성령의 힘도 함께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파견하실 때 지팡이의 능력도 함께 주셨습니다.
말과 능력이 합쳐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믿고 홍해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이 따르지 않는 증언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둘이 아니시듯 진리는 능력과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지 않으면 진노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보육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7세 담임을 하던 시절 만난 재혁이(가명)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형과 사는 아이였습니다.
바쁜 아빠는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난과 훈계를 일삼았던 분이었습니다. 
 
저희 원에 3세부터 다니던 재혁이는 집에서 채우지 못하는 욕구와 감정을 원에서 해결했습니다.
아이들을 때리고 교사들을 괴롭히기 일쑤였죠.
당연히 교사들은 재혁이 담임이 되는 걸 두려워했고, 재혁이로 인해 많은 엄마의 불만이 차고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혁이 담임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첫날 다른 친구들보다 두 배는 덩치가 큰 재혁이를 아이들 앞으로 세웠습니다.
‘얘들아, 사람은 모두 다른 장점이 있거든.
우리 재혁이는 튼튼한 몸이 있어서 1년 동안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을 도와주고 지켜주는 보디가드가 될 거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재혁이에게 도움을 청하자. 재혁아 도와줄 수 있니?’
 
그리고 수시로 교실에서 재혁이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재혁아, 선생님 좀 도와줄래?’
‘재혁이가 있어서 선생님은 너무 든든해.’
‘재혁아, 너는 참 괜찮은 친구야!’
 
‘그동안 재혁이 마음이 아팠던 건, 그래서 친구들을 괴롭혔던 건 재혁이 잘못이 아니야. 사람들에겐 모두 사랑 창고가 하나씩 있는데 어른들이 우리 재혁이 사랑 창고를 채워주지 못해서 재혁이가 친구들에게 줄 사랑이 없었던 거야.’
‘오늘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재혁이 도움을 많이 받았네. 고마워.’
 
그렇게 재혁이는 달라졌습니다.
졸업식 날 재혁이 아버님께서 참 많이도 우셨습니다.
재혁이에게 미안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재혁이와 약속했습니다.
'이제 아빠도 괜찮은 아빠가 될게.' "
 


[출처: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다음 카페, ‘광양 시립 진상 어린이집’] 
 
 
이 보육 교사는 분명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고 그래서 사랑밖에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진리이고 능력입니다.
위 교사는 자신이 믿는 진리를 증언하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 증언대로 아이를 변화시켰습니다. 진리 안에는 능력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그동안 아버지가 재혁이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진노가 따를 것입니다. 변화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기적보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이렇듯 진리의 증언에는 능력도 함께 따르기에 믿지 않으면 고집을 부리는 것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무술과 진리가 관련이 없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안에서도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 무술이 시대에 뒤떨어졌고 실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는 중국인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가짜 무술 헌터라고 불리는 쉬샤우둥입니다.
 
알리바바의 마윈까지도 쉬샤우둥을 이기는 중국 무술 고수가 있다면 수십억 원을 주겠다고 돈을 내걸었습니다. 
이에 중국 무술 고수들이 도전했다가 번번이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는 김치가 중국 것이고 태권도도 중국 것이라는 주장에 김치도, 태권도도 한국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합니다.
그런데 중국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그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하는 말이 옳아지려면 그에 따른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 무술은 계속 시대에 뒤떨어져 그의 말대로 서커스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진리를 믿지 않는 데서 오는 진노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뿐만 아니라 당신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가 그분의 대를 이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감히 시작할 용기도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능력이 있음에도 믿지 않는다면 더는 희망이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왜 쉬샤우둥의 말을 믿지 않을까요? 그들이 평생 해 온 무술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신 그리스도의 증언 앞에서 그러하면 안 됩니다.
그분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면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능력을 수반하지 않는 진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믿을 근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증언을 믿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 한 것이기에 진노를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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