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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13 조회수 : 3256

세상 이치가 힘들면 천상 진리는 더 힘들다. 
 
 
오늘 복음도 어제에 이어 ‘새로 태어남’에 관한 요한복음의 연속입니다. 
니코데모는 새로 태어나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이 말씀의 저변에는 ‘세상 이치’와 ‘하늘의 이치’가 둘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말하는데도 믿지 못하면 그것과 연결된 천상의 이치를 믿는 것은 더 불가능합니다. 
 
혹은 어떤 이가 천상 진리를 말한다고 하면서 지상에서 그 ‘예’를 찾아낼 수 없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천상에 계신 분이 세상도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화를 찾아낼 수 없는 가르침은 그저 뜬구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 태어남’에 관한 이 세상의 이치를 믿고 있나요? 
부모는 자녀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기 위해 ‘사랑과 모범’을 줍니다. 
사랑으로는 아기에게 자신이 부모라는 것을 믿게 만들고, 모범으로는 자신을 본받게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늑대에게 자란 아이들, 아말라 카말라의 예를 많이 드는데, 그들은 늑대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 자신이 늑대라 믿게 되었고 또 늑대의 ‘모범’을 본받아 늑대의 본성을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인간에게 태어났지만 늑대의 사랑과 가르침으로 사람이 아닌 늑대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나려면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은총)과 하느님이 보여주신
‘모범’(진리)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주신 사랑은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그 살과 피로 자녀에게 ‘믿음’을 줍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드님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느님 자녀로서의 ‘모범’입니다.
이를 ‘진리’라고 하고,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빛’이요 ‘진리’라고 하십니다. 이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믿음이 생긴 아기는 부모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부모를 모방하며 부모처럼 성장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진리’와 ‘하늘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서 진리라고 믿어지는 것을 실천해봅시다.
그러면 하늘의 진리에 무리 없이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세상의 진리와 천상의 진리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부자들을 보면 ‘부모를 잘 만났겠지!’, ‘운이 좋았던 거겠지!’라며 넘겨버립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한 이들은 한결같이 ‘비밀’(시크릿)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시크릿이란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된다.’라는 성경의 진리와 같습니다. 
 
이서윤, 홍주연의 ‘더 해빙’이라는 책도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서윤 씨에게 상담하러 온  어떤 분의 사례가 실려있는데 과연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믿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책 내용의 일부를 살펴봅시다. 
 
“선생님,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2억 달러 이상을 원합니다.
그 돈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너스도 많이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자본과 경험이 없고 나이까지 많은 제가 불가능한 꿈을 꾼다는 거죠.
그런데도 꼭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대학교수 출신인 한 사업가가 찾아왔습니다. 이서윤 씨는 그에게서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순수한 믿음과 구루의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그녀는 해빙을 가르쳐준 뒤 한 달 동안 그것을 실천하라고 권했습니다.
 
해빙을 배운 그 사업가는 매일 ‘있음’을 느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업을 운영할 돈이 있으니 이렇게 출근할 수 있구나! 이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자.’
스스로를 이렇게 북돋우기도 하고
‘신용이 있으니까 빚도 낼 수 있는 거야. 이자를 낸다는 것 자체도 돈이 있다는 증거지.’ 
‘월급날이 되었네. 직원들에게 줄 돈이 있음에 감사해야지.’
 
한 달 후, 그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해빙을 하면서 제가 가진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탄탄한 기술력과 좋은 연구진들이 있더라고요.” 
“중요한 건 그 깨달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거예요. 그 사실들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우선 마음이 편해졌어요. 걱정과 불안이 줄어들고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온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도는 것 같아요.”
 
그는 직원들에게 해빙 정신을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과학자가 돈 버는 것을 보여주자.’라며 연구원들을 독려한 것입니다.
얼마 후 그는 특허를 출원했고, 개발한 기술을 담보로 100만 달러의 투자까지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위기를 벗어난 다음에도 커다란 행운은 계속 찾아왔습니다.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 수출되면서 회사의 매출도 수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고 돈을 많이 번 사업가는 섬과 말 목장도 사고,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도 나눠주었습니다.
자신이 꿈꾸던 그대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례를 들으면 어떠한 느낌이 드십니까?
저속한 돈 버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님 진리와 연결하느냐고 거부감을 느끼십니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끊어야 한다는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끊으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가진 것을 더 끌어당기는 ‘법칙’이 작용합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시크릿’의 법칙입니다. 
 
물론 부자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닐 수 있어도 이런 종류의 책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에게 상당히 오랜 기간 읽히고 있고 부자들은 대부분, 이 법칙에 긍정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병철 회장이나 김우중 회장 등도 결국 돈의 이치에 관해서만 생각하다가 신의 존재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천상의 이치는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말하는 현인들의 가르침을 먼저 믿고 삶으로 실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리는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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