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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4-04 조회수 : 3777

왜 운이 좋은 사람은 항상 운이 좋을까?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옵지 못하면 주님 부활을 기뻐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다 기뻐했던 것은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주신 이들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극소수의 공동체에 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으로 부활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부활을 체험한 이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났는지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가장 처음 부활의 소식을 접하게 된 여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활 성야 미사에서 읽히는 복음에서는 여인들이 주일 아침 일찍 향료를 사서 주님의 무덤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무덤을 막고 있는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이었습니다.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사실 이성적으로는 그녀들은 무덤 앞에서 허탕 치고 다시 돌아왔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돌이 굴려져 있었고 천사가 그녀들을 맞아주었습니다.
그녀들이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었음을 우리는 그녀들이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두려워 입을 막고 있었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주님은 당신을 만나기 위해 막연하게나마 노력하는 이들의 수고를 헛되게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녀들이 무작정 무덤으로 달려가서 얻게 된 것은 천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행운은 바로 막연하게 행동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진정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떠한 식으로든 체험하고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운 앞에는 항상 커다란 돌이 놓여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서 그런 행운을 만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위해 막연하게나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있고, 막연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무언가 하는 사람 마음 안에는 ‘희망’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 막연함을 지금 처지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핑계 대는 이유로 삼습니다.
우리는 행운이 누구에게 찾아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막연한 희망으로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 무엇이라도 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모두에게 빠지지 않는 답 중의 하나가 ‘운이 좋았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만 그런 행운이 찾아드는 것일까요? 바로 ‘희망’의 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왕에게 근심이 생겼습니다.
중국 왕이 우리나라 왕에게 선물을 보내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비싼 것을 가려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내온 것은 배가 뿔룩 나온 승려 상 4개였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어느 날 한 선비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주 가느다란 철사를 꺼내 승려 상 하나를 택해 그 철사를 찔러넣어 보았습니다.
철사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선비는 말했습니다.
 
“이 승려 상은 귀가 막혀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 상은 값싼 것이옵니다.”
 
선비는 다른 상에도 철사를 찔러넣었습니다.
철사가 귀로 들어가더니 다른 쪽 귀로 통과되어 나왔습니다.
 
“이 상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뜻이니 남의 말을 소홀이 듣는다는 뜻입니다.
이것도 값싼 물건입니다.”
 
선비는 세 번째 상에 귀에 철사를 찔러넣었습니다. 이번에는 철사가 입으로 나왔습니다.
“들은 것을 바로 발설하는 자이니 이것도 값싼 것이옵니다.”
 
마지막 상의 귀에 철사를 찔러넣었는데 철사는 계속 들어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비가 설명했습니다.
“귀로 들어간 철사가 계속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말을 듣고 깊이 간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상이 가장 비쌀 수밖에요.”
[출처: 『돈보다 운을 벌어라』, 김승호, 유튜브 채널, ‘책한민국’]
 
운명은 내가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거나, 들은 것을 다른 귀로 흘려보내거나,
입으로만 말하는 것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들은 것이 몸에 소화되어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들은 것이 ‘희망’이 되었다면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사람만이 들은 것을 행운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가 십일조를 하라고 해도 하시는 분들보다 안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임을 압니다.
분명 들은 것을 아무 생각 없이 해 보려는 사람보다 아예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다른 귀로 흘려버리거나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행운이 오겠습니까?     
 
그들을 막고 있는 그 막연함의 돌이란 ‘내가 옳다.’는 자기주장입니다.
그 내가 옳다는 생각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희망도 자신 안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그 돌 뒤에 있는 행운의 천사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좌 때 군대에서 귀신을 본다는 청년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귀신을 본다고 무서워 매일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괴롭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으며 그 귀신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나는 이 세계에 머물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인간 세계에서 살고 싶어.”라는 의지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막연한 시도가 귀신이 더는 괴롭히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어머니와 청년은 막연하게나마 주님이 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일 전화하는 것을 선택했고, 어머니는 오랜 냉담을 풀고 사제인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마음으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희망’이란 것이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는 할 수 없어도, 그냥 무엇이라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막연함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 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행운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체조배에 관한 저의 동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실제로 성체 앞에 시간을 정해서 앉아있으려 하고, 어떤 분들은 그런 행동까지 가지 않습니다.
행운은 내 엉덩이를 집 소파가 아닌 성당 의자로 옮겨 놓는 행동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막연한 희망에서 나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돌이 치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돌로 막혀 있는데도 막연하게나마 향유를 들고 길을 떠났던 여인들이 가진 희망의 덕을 묵상합시다.
왜 운이 좋은 사람들은 계속 운이 좋을까요?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시기에 좋은 것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항상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희망의 힘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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