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전문가가 되려거든: 맛을 보고 무엇을 넣었는지 기억하는 과정을 반복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리옷 유다의 배신을 요한에게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가리옷 유다처럼 되지 않으려면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증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신앙생활에 발전이 없다면 가리옷 유다의 잘못을 되풀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은 어떻게 증가시켜야 할까요? 믿음은 ‘시험’을 통해 증가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려면 한 번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부모를 믿는 이유는 다른 사람은 잠깐 나에게 잘해줄 수 있지만, 부모는 못 해주는 건 잠깐이고 대부분은 나에게 잘해주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전장치 하나도 없이 손가락 한두 마디로 버텨야 하는 ‘프리 솔로’ 암벽등반으로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975m에 달하는 바위산 ‘엘 카피탄’을 오른 ‘알렉스 호놀드’는 어떻게 그 산을 오를 수 있는 믿음을 얻었을까요?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계획을 세우고 안전장치를 이용해 50번을 등반하고 나서야 그런 믿음이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면허를 따고 운전대를 잡으면 도로에 나가기 두렵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지나다 보면 그런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나친 자만심만 아니면 초보 때 두려워할 때보다 훨씬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두 뜻이 있습니다. ‘주님 뜻을 죽이고 내 뜻을 사는 것’과 ‘내 뜻을 죽이고 주님 뜻으로 사는 것’입니다. 두 뜻은 반대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 굳이 당신 뜻을 알려주실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뜻은 내가 살고 이웃을 죽이는 것이고 주님 뜻은 내가 죽고 이웃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 놓인 선택은 이 두 개만 구분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뜻인지 살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뜻은 분명 결과가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은 생명력입니다. 행복하면 살고 싶고, 행복하지 않으면 죽고 싶습니다. 가리옷 유다의 선택은 내가 살고 이웃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살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죽고 이웃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뜻은 그리스도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려두시려는 이유는 이 뜻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뜻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면 십자가 앞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되지만, 지금 어떤 뜻을 따르는지 구분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믿음에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여성이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았습니다. 딸도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취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너무 안 좋아진 상태였습니다. 마침내 어머니는 딸에게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사파이어 원석이 박힌 금목걸이를 돈을 많이 쳐 주는 금방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후해 보이는 아저씨가 있는 금방에 들어가서 사파이어 금목걸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주인은 대뜸 “이거를 왜 팔려고 하지?”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네, 저희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금방 아저씨는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지금 보조가 필요했는데 네가 내 일을 좀 도와줄래? 그리고 미리 가불을 해 주면 그것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이것은 나중에 팔아도 되잖아.”
딸은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보석상의 보조를 하며 보석을 감정하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딸이 그 일을 매우 좋아했으므로 보석 감별 능력도 뛰어나게 발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딸에게 보석을 감별해 달라고 부탁하러 그 가게에 들렀습니다. 이런 때 보석상은 말했습니다.
“자, 이제 가보로 내려오는 사파이어 목걸이를 팔아야 하지 않겠니?”
그녀는 어머니에게 가서 목걸이를 팔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보았는데, 좀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목걸이는 순금이 아닌 도금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파이어도 미세한 금이 가 있어서 값이 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보석상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그때 보시고 이 목걸이가 값이 나가지 않는 것임을 아셨을 텐데 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말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니? 난 네가 스스로 그 값어치를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를 기다렸던 거야.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은 것 아니겠니?”
[출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유튜브 채널, ‘책읽는 다락방 J’]
예수님도 제자들을 뽑으시고 누가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따름이, 곧 사랑을 따름이 더 행복이고, 더 행복하다면 그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임을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리옷 유다는 그 분별 능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자신이 선택할 때 어떤 뜻을 선택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때는 나의 선택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라 여기고 나쁠 때는 예수님을 따르니 그런 것이라 여겼습니다.
믿음을 증가시키려면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어떤 재료 때문에 이런 맛이 나는지 명확히 알아서 조금씩 재료와 조미료, 조리방법을 바꿔가며 음식을 완성해 갑니다. 우연히 아주 맛있는 음식이 나왔는데 조리법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음식에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도 시험하며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뜻’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뜻은 내 뜻과 주님 뜻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매우 쉽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보면 됩니다. 당연히 이웃을 행복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나중엔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결과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항상 똑같습니다. 결과가 안 좋다면 그것은 내 뜻인데 주님 뜻으로 위장하여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넣었는데 맛이 달아질 수 없고, 설탕을 넣었는데 짜질 수 없습니다. 항상 결과를 보고 무엇을 넣어서 그런 맛이 나는지 살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지속 되면서 오직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만이 참 행복이요 생명임을 구분할 수 있는 믿음의 전문가가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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