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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3-28 조회수 : 3226

3월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마르코 14,1-15,47
 
사랑 = 어린 나귀(겸손) + 어린 양(온유)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전례에서 메시아요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분명 어린 나귀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왕은 말을 타야 정상이겠지만, 예수님은 마치 당신이 받는 영광에 합당하지 않은 듯 어린 나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이 실현되기 위해 그리하신 것입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     
 
제가 요즘 많이 묵상하는 주제는 다 아시다시피 ‘군고구마’입니다.
사랑이 되는 것을 잘 표현해주는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어린 나귀’는 바로 ‘고구마’를 나타냅니다. ‘겸손’입니다.
내가 고구마보다 더 잘난 사람으로 느낀다면 사랑은 틀렸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남을 위해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심으로써 그런 겸손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전례에서 예루살렘 입성 예식 후, 본당에서 하는 미사 전례 복음은 마르코 수난기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침묵’이 두드러집니다. 어차피 죽을 거 괜히 반박하거나 변명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때 예수님의 모습은 ‘어린 양’으로 상징됩니다.
이런 모습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라는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이십니다.
겸손하심이 ‘어린 나귀’로 상징된다면, ‘온유함’은 어린 양으로 상징됩니다.
이 겸손과 온유가 합쳐지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겸손이 자신을 고구마로 느끼는 것이라면, 온유함은 에어프라이어에 들어가 잠자코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군고구마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노신임 작가의 『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이란 책이 있습니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위한 딸의 고통스럽지만, 기분 좋은 사랑을 그렸습니다.
노신임 작가가 직접 아버지께 한 사랑입니다. 그 모습엔 군고구마 맛이 납니다.
어린 나귀와 어린 양, 곧 겸손과 온유가 다 들어있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만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풀풀 나기 시작했다. 거실 화분 옆에 작고 둥근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 똥이었다.
며칠 후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아빠가 거실을 걷고 있는데 아빠 옷자락에서 작은 물체가 툭 튀어나와서
거실 수납장 쪽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엄마 말대로 똥의 주인은 아빠였다.
마치 농부가 정성스레 씨를 뿌리듯 아빠는 똥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어느 날엔 집안 사방팔방 똥으로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아빠는 기저귀 착용을 완강히 거부했다. 오랜 궁리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명 기저귀 패션쇼. 원래 남이 하기 싫은 건 나도 하기 싫은 법이다. 반대로 남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나도 하고 싶어진다.
‘기저귀 차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보여주자. 그러면 아빠도 기꺼이 기저귀를 찰 것이다.’     
 
다음 날부터 츄리닝 위에 기저귀를 덧입었다.
일부러 집안 곳곳을 배회했다. 아빠는 놀라는 반응이었다.
 
‘신임아, 너 그게 무슨 옷차림이냐?’
‘어 이거 나 기저귀 찬 거야. 아빠, 몰랐구나. 요즘엔 기저귀 차는 게 유행이야. 색상도 데게 다양하게 나와 있어. 핑크색 입으려다가 많이 튈까 봐 이거 하얀색 입은 건데. 이 기저귀 입으면 복이 온대. 앉아도 푹신하고 골반을 착 잡아줘서 고관절도 튼튼해진대.’
 
나의 기저귀 패션쇼는 1주, 2주, 3주가 지나도록 외롭게 진행되었다.
여전히 아빠는 기저귀를 거부했다. 또다시 일주일쯤 지났을 때 아빠가 날 불렀다.
 
‘신임아, 그거 그렇게 입을 만하냐? 기저귀 말이야.’
순간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렇게 아빠의 기저귀 착용이 시작되었다.”
[출처: ‘7년간의 마법 같은 기적’, 유튜브 채널, ‘책한민국’]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되는 것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되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온유함과 겸손으로 타인을 위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위 이야기에서 노신임 작가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중증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한 거짓말은 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를 위해 다 큰딸이 기저귀를 차고 1달 동안 집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 사랑이 아버지도 기저귀를 차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이러한 모습을 닮지 못하면 오늘 나귀를 타고 들어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노력이
우리에겐 헛것이 될 것입니다. 자존심 내려놓고, 고구마임을 인정합시다.
 
사실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지 않으셨다면 고구마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구미에 맞게 십자가에서 구워집시다.
사람들이 나를 먹고 자신도 그런 기저귀를 차고 싶어진다면 성공한 것입니다.
그 기쁨은 그동안의 노고를 다 잊게 해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그러한 군고구마 사랑도 주님 마음에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가 고구마임을 기억하게 만드는 어린 나귀를 탄 그리스도와 구워져야 한다는 십자가 위의 어린양의 모습을 항상 바라봅시다.
그러면 매일 조금씩 더 맛있게 구워져 더 큰 사랑이 될 것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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