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긍정은 여러 부정의 결과다
오늘은 성자께서 성모 마리아 태중에 구세주로 잉태하신 날입니다. 이 구원의 결정적인 역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성모님의 긍정(Amen = Fiat)입니다. 긍정이 곧 잉태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가르침을 줍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무언가 되어가는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이셨지만 그분의 긍정으로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인간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과 하나 되어 계신 하느님께도 함부로 대하는 것이기에 독성죄가 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무언가 되어가는 방법이 ‘긍정’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시며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긍정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인간의 품위를 넘어서 하느님과 한 몸인 지위까지 오르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긍정’은 항상 ‘부정’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들은 아이들 미래의 ‘꿈’을 명확히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그 꿈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꿈을 방해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어디가 깨졌는지 찾고 그것들을 수리해 나가는 게 우선일까요? 물은 붓지 않아도 됩니다. 언젠가는 비가 와서 독이 채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깨진 곳을 수리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어렸을 때 천재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 모든 축복이 오히려 저주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장가 왕안석은 ‘상중영(중영이란 사람의 경우를 슬퍼함)’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서 무엇이 천재적인 능력을 망치게 만드는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강서성 금계현에 방중영이란 아이는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글공부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아이는 붓과 벼루, 종이를 달라고 하더니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족이 서로 합심하자는 내용의 시를 거침없이 썼습니다. 다른 시제를 주어도 척척 문장을 적어 내는데 그 내용과 운율이 기가 막히게 매끄러웠답니다.
이에 부모님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방중영을 신동이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했고, 현에서는 중영의 아버지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지방의 권력가들은 중영이 커서 큰 인물이 되면 훗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미리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중영의 아버지는 점점 돈에 욕심이 생겨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중영의 재주를 보이고 돈을 벌었습니다. 중영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에게 돈을 벌어주는 일을 하게 되어 이런 삶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오랜 시간 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떠돌다가 중영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영재발굴단’에서 ‘우주를 보는 천재 소년’ ‘강범진’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의 독특한 그림 실력으로 초등학교 때 이미 영화제작사가 그에게 관심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 그림을 포기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려면 모두 같은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획일화된 입시경쟁에서 범진군의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학교를 자퇴시키고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만의 독특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방중영의 아버지와 강범진군의 어머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범진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더 명확히 알려주었습니다. 방중영의 아버지는 돈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인지 몰랐습니다. 재능만 닦아나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속-육신-마귀의 욕구는 아무리 재능이 많이 들어와도 그것들을 다 흘려버리게 만듭니다.
구약의 요셉이 능력이 많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죄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티파르의 아내가 그를 유혹할 때, 그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에 뿌리쳤습니다. 이 능력이 결국엔 모든 이를 살리는 은총이 담길 그릇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아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해도 결국 게임이 왜 안 좋은지, 경쟁이 왜 나쁜지, 안 좋은 동영상을 보거나 지나친 호기심으로 왜 죄를 지으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해야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 세상 구원을 위한 메시아를 잉태하실 수 있으셨던 결정적인 이유는 ‘원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세속-육신-마귀입니다. 아무리 좋은 능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자기만을 위해 써먹으려 했다면 성모님일지라도 구원자를 잉태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연간 35만 명의 소아마비 환자들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무료로 뿌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조너스 소크’(Jonas Salk)입니다. 1955년 4월, 원자폭탄만큼이나 미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소아마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발표할 때, 기업들은 앞다투어 그 백신 특허권을 자신에게 팔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때 조너스 소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허 같은 건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만약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특허를 냈다면 수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신 제조 방법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다른 백신을 만들겠다며 다시 연구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분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가장 닮은 분입니다. 이분이 머리가 좋아 백신을 만든 것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온 인류에게 그 사람을 통해 필요한 은총을 주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성공합니다. 타고난 천재만 할 수 있다는 체스 세계 챔피언을 세 자매 모두 만든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이 온 세상에 유익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모님이나 조너스 소크처럼 죄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분명 온 세상을 유익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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