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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11 조회수 : 3396
3월 11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1,14-23
 
선교하지 않는 신앙인 = 전쟁 중 탈영한 군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을 때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들을 믿게 하려거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예수님은 마치 악의 세력과 전쟁터에서 싸우시는 장군과 같으십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서 그분 곁에 머문다는 사람들이 “혹시 적군 아닌가요?”라고 하거나, “아군이라는 표징이 있나요?” 라고 한다면 답답한 일일 것입니다.
 
사실 군인이라고 하면서 그분과 함께 싸우지 않는 사람은 적군이나 다름없습니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 탈영은 어느 군대에서는 사형입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직무를 이어받아 세상에서 악과 싸워가며 교회라는 방주에 사람들을 태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에서 의무는 하지 않고 놀고먹으며 불평만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어떠한 단체나 사회도 그 사회에 머무르려면 그 사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의무는 해야 합니다.
 
지난해 6월 8일, 서울 강동구 고덕역 인근에서 구급차를 가로막아 이송 중이던 환자를 숨지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씨(32)는 사설 구급차가 앞으로 끼어들자 고의로 들이받아 사고를 낸 뒤 “사건처리를 먼저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씨는 “환자부터 이송하고 오겠다.”라는 구급차 기사의 말에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라며 붙잡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환자 이송은 11분이 지체됐고 80대 환자는 최적 시간을 놓쳐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씨는 수리비 명목으로 총 72만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최씨는 지난 2017년 7월께에도 서울 용산구 인근에서 택시를 운행하다 사설 구급차가 끼어들자 고의로 들이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밖에도 2017년 6월부터 2019년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작은 사고에도 크게 다친 것처럼 행세해
보험사로부터 1700여만 원의 보험금을 받아 챙겼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엔 피해 운전자에게 직접 370여만 원을 치료비 명목으로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고, 최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었습니다.
검찰에서는 2심 때 2년 징역형은 너무 가볍다며 7년을 구형하였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이란 커다란 한 사회에 살기 위해서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피해를 주고 결국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박탈당합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 사회가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은 더 완전한 행복의 나라를 원하십니다.
 
1920년대 후반 매사추세츠주의 법정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사건은 부둣가를 거닐던 사람이 로프에 걸려 차갑고 깊은 바닷속에 빠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허우적대면서 도와 달라고 소리치다가 물속으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몇 미터도 못 되는 거리에 젊은이 한 사람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와줘요. 난 헤엄칠 수 없어요.”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빠져 죽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익사자의 가족은 그 사람을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은 “부둣가에 앉아 있던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어떠한 법적 책임이 없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사회에서는 그저 남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하늘 나라에서는 더 큰 의무가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무관심으로 누군가 고통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더 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책임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지옥이라는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배에 타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다면 그 배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이 얻어질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는 세상에 선교하러 오셨습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배에 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선교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교회 전체에 사기를 떨어뜨리는 탈영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영화 ‘명량’(2014)에서 열네 척밖에 배가 없는데 수백 척의 일본 배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몇 명이 탈영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려워서 떠나겠다는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그들의 목을 칩니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랑이라는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습니다.
선교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누군가에게 당하고 있는데 팔짱만 끼고 있는 자녀는 잘못이 없을까요?
그것 자체가 부모를 괴롭히는 사람을 긍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영혼을 구하기 위해 악의 세력과 전쟁 중이시고 우리는 그 배에 함께 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 때 팔짱만 끼고 구경했던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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