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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08 조회수 : 3537

3월 8일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오 4,24ㄴ-30
 
미움 받을 용기는 소속감에서 나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실 뻔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당시는 가문과 동향인들의 공동체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가족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미움에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단한 ‘홀로서기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홀로서기의 힘’이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서 세상 어떤 힘에도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힘입니다.
나를 돈으로 유혹해도 내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고, 나를 명예나 인기, 혹은 애정으로 유혹해도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힘입니다.
 
이 홀로서기의 힘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떤 것에든 집착합니다. 자신이 휘청거리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잡으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들도 많이 생깁니다.
 
찰스 폰지는 최초 다단계 금융사기 발명가입니다. 처음엔 자신도 이것이 먹힐 줄 알았습니다.
그는 ‘45일 안에 50%, 90일 안에 100%’의 수익을 무조건 올릴 수 있는 투자를 사람들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통용되는 국제반신우표권(IRC)이라는 것을 사서 통화가치가 높은 미국에서 팔면 무려 300%나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투자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그렇게 많이 수입된 IRC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IRC를 팔 수 없게 되자 새로운 투자자들의 돈을 이미 투자한 사람들에게 갚는 식으로 더 투자자들을 늘렸습니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투자자들이 더 많이 늘어나라는 법도 없습니다.
투자자들이 줄어들자 기존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기극으로 인해 8개월 동안 5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의 액수의 돈이 증발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2008년까지 조희팔 씨가 전국에 10여 개의 피라미드 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서 3만여 명의 투자자를 모았고 4조 원을 가로챈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로 남는 것은 고통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홀로 설 줄 모르고 세상 것에 집착하고 휘둘리는 이유는 홀로 설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줄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홀로 설 힘은 가족공동체의 소속감에서만 나옵니다.
아이들이 어디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와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하기에 아이들은 세상 유혹에 혹하는 일이 없습니다.
 
부모와 형제라는 공동체가 아이들이 세상에서 홀로 설 수 있게 만드는 근원적 힘입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의 격리 원숭이 실험에서 새끼 원숭이가 젖을 주는 철사로 된 엄마보다 젖은 주지 않아도 따듯함을 주는 수건으로 감긴 것을 엄마 원숭이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원숭이는 살아갈 힘을 먹는 것보다 소속감에서 더 얻으려 한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원숭이가 그렇다면 사람은 더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부모님이 주는 힘, 가족이 주는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보다도 친구 공동체에 더 속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결혼하면 자신이 만든 가족을 위해 부모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자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회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소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야 세상 어떤 애정에도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 공동체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힘을 줍니다.
 
하지만 지금 교회공동체는 그런 힘을 주는데 지쳐있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신천지에 빠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렵고 적응하기 힘들 때 교회공동체는 어떠한 힘도 주지 못했습니다.
병이 들고 힘들어도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2~3년 동안 자신이 신천지인지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듯하게 말해주는 상담 선생님에게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다른 친구들도 소개해 주며 힘을 주었습니다.
세상 어떤 공동체에서도 힘을 얻지 못할 때 따듯함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니 보통사람 같으면 어떻게 그 집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삶의 힘은 사랑의 공동체에서 나옵니다.
물론 위 자매는 신천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에서 힘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신천지인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들과의 관계를 끊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신천지에 가지 말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에서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소공동체’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실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소공동체가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띠어야 소속감과 홀로 설 힘, 더 나아가 미움 받을 힘을 줄 수 있는데 지금의 소공동체는 그런 모습을 많이 잃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 번 봅시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4-47)
 
이 모습이 하느님을 부모로 둔 교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이상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을지라도 교회 안에서 가족이라는 따듯함을 느낄 수 없다면 성당에 나오더라도 여전히 세상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소속감이 큰 것과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은 비례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 그리고 사도단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당신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 공동체의 힘으로 동향인들이 당신을 다 미워해도 당당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살아갈 힘은 바로 가족공동체의 소속감에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은 다 내어놓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본당 공동체에 십일조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소공동체도 서로 가족과 같은
따듯함을 줄 수 있는 나눔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복음 묵상 나누기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그 실천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오는 힘이 없이는 교회도 힘을 잃고 그러면 응집력이 약해져 성당에 나오는 숫자도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코로나 시기가 교회공동체의 쇄신을 추구하는데 매우 적합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본래 성찬(하느님과 하나 됨)과 만찬(형제들 간의 친교)은 하나였습니다.
사이비에 빠지지 말라고 할 것만이 아니라 우리는 신천지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따듯한 공동체가
준비되어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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