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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3-06 조회수 : 3250

3월6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5,1-3.11ㄴ-32
 
그리스도교 신앙 3단계
 
 
오늘 복음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대상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고 투덜거립니다.
그 이유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신 적이 없는데 아우에게는 암소까지 잡아주는 아버지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큰아들이 기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의 것이 모두 자신의 것임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큰아들과 작은아들에게 공평하게 아버지의 가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께 의무를 다해야만 그 유산이 자신에게 오는 줄 착각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설득할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이 3단계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바리사이-율법학자적인 사람들로서 그들은 의무를 다해야만 하느님께서 축복을 주신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들처럼 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십일조도 철저히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에서 멀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열심히 의무를 하지 않는 타 종교들을 비판합니다.
 
정신의학 전문의사인 이무석 교수의 책에 보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믿었던 첫째 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자신이 쌍꺼풀이 없는 것이 아버지가 동생을 더 사랑하는 이유라 믿었습니다.
 
아버지께 잘 보이려고 공부도 잘하고 사회에서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 잘하려고만 합니다.
이 열등감에 남편도 힘들게 만들고 눈이 작은 것 때문에 남편이 자신을 떠날 것이란 두려움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부모는 조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녀를 모두 사랑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무언가 잘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교회에 당신 살과 피, 그리고 죄의 용서 권한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십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느님의 자비를 너무 과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만 보면 된다고 믿고 의무는 게을리 하는 단계입니다.
 
아버지 유산을 받아 흥청망청 사는 단계입니다.
술에 취하고 게으르게 생활합니다.
실제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두었다는 만족감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더 중시하는 신앙인이면서 죄인인 상태가 됩니다.
 
전에 소개해 드렸던 미자하와 임금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미자하는 임금이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줄 알고 임금의 마차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임금이 먹으라고 내밀었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받더라도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지켜져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그 선까지 무시하며 회개도 없이 고해성사를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남용하는 상태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회개한 탕자의 단계입니다.
무엇이든 다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 자신도 뭐라도 하려고 하는 단계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징집되어 가는 아들에게 새벽 5시에 꼭 무릎 꿇고
엄마가 기도하고 있겠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께 고마우면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날도 새벽 동이 터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아, 어머니가 기도할 시간이구나!’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처럼 무릎을 꿇어보았습니다.
그때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어머니 기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기도에 나도 반응을 할 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선악과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께 해 드려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가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하느님 자비를 굳건히 믿는 두 번째 단계에 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 속함으로써 첫 번째 단계는 뛰어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적어도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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