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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23 조회수 : 3249

무언가 청할 때 주모송부터 바쳐야 하는 이유


오늘 복음은 사순절 때 실천해야 하는 기도-자선-단식 중,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도의 방법은 많을지라도 성경은 ‘주님의 기도’만을 권장합니다. 주님의 기도가 모든 기도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느님께서 왜 카인의 제물은 받아들이시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을 받아들이셨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카인의 제물은 먹다 남은 곡식이었고 아벨은 좋은 양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계시고, 더 황당하게는 하느님께서 채식보다는 육식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제사는 곧 기도입니다. 기도는 축복을 청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청할 때 카인보다 아벨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이유는 아벨은 은총 지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인은 농부였습니다. 처음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아담에게는 농사일을 시키셨습니다. 농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가 하는 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벨은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고 카인은 그 이후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란 마치 세례를 주는 것처럼 선교하고 사랑하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일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선악과에 손을 댄 아담은 남을 사랑하는 일보다는 소유하는 일에 집착합니다. 자기 손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사람은 저주받은 땅에서 고생은 하지만 충분한 소출은 얻어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그에게 축복을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춘추시대 미소년 미자하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일찍부터 위나라 영공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는 궁궐에 머무르면서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미자하의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 어머니를 뵙기 위해 미자하는 영공을 핑계로 왕이 타고 다니는 전용 마차를 타고 대궐 문을 나가게 됩니다. 위나라의 법에 따르면 왕의 마차를 함부로 타다 적발되면 손발을 자르는 형벌에 처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신하들이 미자하를 비판하자 영공은 오히려 그를 위중한 어머니를 위한 효도라고 칭찬하였습니다.


다른 날, 영공과 미자하가 궁궐 산책을 하던 중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발견해 미자하가 한입 먹고는 영공에게 매우 달다며 건네줍니다. 신하들이 미자하의 행동을 비판하며 처벌을 요구하자 영공은 오히려 그를 칭찬합니다. 얼마나 본인을 생각했으면 그 맛있는 복숭아를 다 먹지 않고 자기에게 건네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름다웠던 미자하도 나이가 들고 아름다움이 예전만 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미색이 퇴색하자 영공의 총애도 식어갑니다. 결국, 영공은 지난날 왕의 마차를 함부로 이용하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건넨 일을 문제 삼아 그를 내쫓아버립니다.


여기에서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미자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영공의 마음이 변하여 화를 당한 것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미자하가 영공의 마음에 들 때는 무엇을 해도 괜찮았습니다. 영공은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여쁘게 보이지 않자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무엇을 청해도 영공은 들어줄 마음이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철모르는 어린이일 때는 마냥 예뻐 보여서 조금만 칭얼대면 부모가 웬만하면 다 들어줍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면 부모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제 부모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도 청하기만 한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부모님께 원하는 것을 물을 때,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돼요.”라고만 말할 것입니다. 내 뜻보다 부모의 뜻을 먼저 헤아리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와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그렇게 부모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성모송은 어머니를 통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잘하는 자녀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어머니로 세워주신 성모님을 통해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임을 더욱 명확히 해 줍니다. 물론 영광송은 모든 것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다시 다짐하는 것이니, 하느님 자녀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자세는 주모송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언가 청할 때, 그 청하는 것을 어린이처럼 칭얼대기보다는 부모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수 있게 주모송으로 그분의 뜻을 먼저 헤아려드려야 합니다.


성녀 제르투르다에게 사람들이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성녀 제르뚜르다는 그 기도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알아서 그 기도들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에 그 이유를 물으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뜻을 따라주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도 네 뜻을 따라주기로 결심했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카인인 상태로 청하는지, 아벨인 상태로 청하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카인에서 아벨로 옮겨가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분 뜻을 먼저 헤아릴 때 농사를 짓던 아담에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아담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에서 가장 기본 되는 구절이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에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신 것입니다.


무언가 청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께 알리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뜻에 관심을 가지는 당신 자녀인가, 아니면 요구만 하는 외부인인가에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기도로 우리가 그분의 모든 은혜를 당연히 받아야만 하는 은총 지위로 이끌어주는 유일한 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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