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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21 조회수 : 3369

성령을 받으면 만남의 광장이 된다 
 
 
‘광야’라는 장소는 성령을 받으면 누구나 향하게 되는 자기와의 싸움의 장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은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고 광야로 나가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속-육신-마귀의 욕구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마태오와 루카 복음과는 다르게 마르코 복음은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해 더 관심을 둡니다. 
 
“그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들짐승과 천사들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천사가 들짐승과 사귈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천사와 들짐승이 만나게 됩니다.  
 
마르코는 성령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면 천사와 같은 사람과 들짐승과 같은 사람을 함께 만나게 하는 만남의 광장과 같은 사람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살 강우는 뇌종양으로 투병중이었습니다. 
부모가 신자는 아니었지만 지인의 부탁으로 대세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베드로 수녀님이 일하는 병원 원목실에 찾아온 것입니다. 
 
워낙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 예수님에 관해 말해주는 것이 편했습니다.
“강우는 정말 예쁘고 똑똑하네. 딱 하느님의 아들 하면 되겠다.”
“그럼 나도 세례 받으면 하느님 아들이 될 수 있는 거야?” 
 
강우 어머니는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왜 하느님이 계시면 자기 아들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강우는 손을 잡아끌고 나가려는 엄마와는 달랐습니다. 
 
“엄마, 나 하느님 아들 될 건데 왜 가자고 해? 나 안 갈래!”
엄마는 떼를 쓰는 강우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강우는 수녀님을 아줌마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빨리 하느님 아들 만들어줘. 하느님 아들 되려면 뭐하면 돼? 어떻게 하면 돼? 
기도가 뭐야? 어떻게 기도해?” 
 
수녀님은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수녀님은 임마누엘이란 세례명으로 강우에게 대세를 주고 14처 패가 달린 15단짜리 커다란 묵주를 주며 
“하느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열 번, “성모님 사랑합니다.” 열 번, “예수님 사랑합니다.” 10번씩 
반복해서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는 그거는 쉬운 거라 말했습니다. 
아이의 치유만을 바라고 왔던 어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강우는 수녀님에게 받은 묵주를 항상 몸에 두르듯 걸치고 기도했습니다. 
불편하니 묵주를 벗으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어머니는 아이 부탁으로 기도서를 읽어주었는데 조금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지쳐버렸습니다. 
강우는 그러면 아버지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수녀님이 보고 싶다며 보챘습니다. 
 
수술이 있는 날 밤 11시가 넘어서 강우를 찾았습니다. 
강우는 큰 묵주를 몸에 감은 채 정자세로 십자가를 쥐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강우는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를 열 번씩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며 “수녀님! 나 하느님 아들 맞지?”라며 물었고, 
수녀님은 “맞지. 하느님이 다 낫게 해 주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강우는 “그렇구나. 근데 안 낫게 해 줘도 괜찮아.”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심장이 저며 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수녀님이 다녀간 후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수녀님이 하느님 사랑을 많이 주고 갔어. 
그러니까 엄마도 하느님 사랑해 해 봐! 성모님도 사랑해 해 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세례를 받으라는 강우의 말에 엄마는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강우는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갔습니다. 
투병한 지 1년 반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강우는 시력을 잃어갔지만, 엄마 마음이 아플까 봐 일부러 물건들의 색을 외워 엄마에게 대답했습니다. 
의사의 말에 화가 난 엄마는 믿을 수 없다며 끊임없이 아이에게 물건을 집어 색과 글을 맞춰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목을 작은 두 팔로 꽉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 사랑해. 엄마 많이 사랑해요.” 
 
슬픈 일이었지만, 어머니이기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했습니다. 
솔직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엄마는 오열했고 아이는 그때마다 엄마 목을 끌어안고 “사랑한다, 괜찮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엄마는 ‘칠흑 같은 어둠과 극심한 고통 속에 사는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담대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성호경과 묵주기도를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뇌 압력이 오를 때마다 아이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떼굴떼굴 구르면서도 잠시 고통이 멈추면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그 모습에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고통을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봅니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라고 수녀님이 주신 요셉 배지를 달아주는 것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 성호경을 긋던 아이는 그 배지를 달아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배지를 단 강우는 “엄마, 빨간 목도리를 한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이 와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야 그분들이 순교자들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강우야,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왜 미안해요. 내가 너무 미안해요.”
“아들 잘 자, 사랑해.”
“사랑해요,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그날 새벽 4시 25분. 엄마는 무심히 고개를 돌려 누운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의 손이 하늘 쪽으로 번쩍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누운 채로 왼손은 가슴에 올린 채 말없이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두 번을 다 긋지 못하고 손이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더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순간이 아이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식으로 살았던 순간이고 연명치료는 아이에게 고통만 줄 뿐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용서를 청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수녀님은 미안하단 말보다는 고맙고 사랑했고 행복했다는 말을 해 주라고 권했습니다.  
 
임마누엘은 고맙고, 사랑했고, 행복했다는 부모의 말을 들으며 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이후 아버지 어머니는 세례를 받고 봉사도 많이 하는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출처: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 이영숙 베드로 수녀, 비움] 
  
성령을 받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면 그렇지 못했던 들짐승의 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 자신을 도와주는 천사들을 만납니다. 
강우로서는 수녀님이 천사였습니다. 
들짐승은 강우 부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 자녀로서 광야에서 동물의 본성으로 끌어내리려는 사탄과 싸워 
결국 들짐승과 천사가 하나로 만나는 장이 되셨듯이, 
강우도 그렇게 수녀님과 부모님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삶은 이렇듯 성령을 받으면 광야의 삶을 살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처럼 천사와 들짐승을 이어주는 하느님 자녀의 삶임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광야에서 우리 자신과 싸우게 하시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닮은 천사와 들짐승이 만나는 광장이 되게 하심입니다.  
 
행복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하느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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