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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16 조회수 : 3211

나눔의 공동체가 신적 존재의 증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하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이 ‘배로 가져온 빵이 한 개밖에 없어서 그런 말씀 하시는가 보다.’라고 수군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5천 명, 4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 일곱 광주리가 남은 것을 보고도 당신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완고한 마음을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이 기적이 당신을 하느님으로 믿게 할 충분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본성으로 태어납니다. 생존 욕구만을 지녀 나눌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족과 자기 것을 나누어 앞으로 먹을 것을 공동으로 비축하는 바이러스나, 기생충, 모기 같은 것들은 없습니다. 이것들은 오로지 자기만 압니다.


그런 결과 이들이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진정한 가족 공동체가 이뤄지려면 그 구성원이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 내어줄 수 있는 본성으로 탈바꿈돼야 합니다. 부모는 서로서로 자기 것을 나누고 자녀들도 그렇게 가르침으로써 가족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의 힘만으로는 가족보다 더 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어떤 커다란 공동체가 마치 가족과 같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 그 속에서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더 큰 사랑의 존재를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소임을 하고 있을 때, 곤지암에서 온 안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혼자 묵주기도만 열심히 하고 수녀님이 와서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찾아오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그냥 할머니 옆에서 묵주기도 1단 함께 해 주고 자리를 뜨곤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일이 있어서 함께 할 수 없었는데 다음에 갔을 때는 “아니,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어딜 갈 땐 간다고 말을 하고 갔었어야지!”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사랑을 충분히 받아보지 않아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있음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시집을 가서 29세 때 자식 없이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친정집도 가난해서 연락이 끊겼고 형제들도 다 죽었습니다. 할머니는 머리에 비단을 이고 장사하셨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계실 땐 힘들어서 짜증도 났지만 혼자 되니 너무 적막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대세를 받았고 그때 할머니도 안나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집에 성모상을 놓고 기도를 드리는데 외로움이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시어머니처럼 대하며 살았습니다. 밥도 한 그릇 더 차려놓고 대화하고, 비단을 팔아서 번 돈을 반반으로 나누어 반은 성모상 밑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둑이 들어서 자기 돈과 비단을 모조리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상 밑의 돈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니, 집 잘 보라고 했더니 자기 돈만 지키고 내 돈은 가져가게 내버려 뒀어요?”라며 성모님께 호통을 치셨습니다. 뉘어놓고 매도 때렸습니다. 며칠 뒤 한 청년이 비단과 돈을 가져와 무릎을 꿇고 “제가 아무리 이곳을 벗어나려 해도 계속 이 집 문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할머니는 청년이 딱해서 취직도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79세에 방광암이 들어 이렇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검사를 받으러 병실을 비울 때는 수녀님에게 작은 보따리를 맡겼습니다. 그 보따리 안에는 통장과 폐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수녀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몇 번을 권해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인데 왜 남에게 주느냐며 수녀님을 “도둑년”이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수녀님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줄 알고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할머니가 마음을 열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할머니는 며칠 뒤 눈물을 흘리며 꿈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친정어머니인지, 큰언니인지 모르겠지만 참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가 왔다 가셨어. 갑자기 내 손을 잡고서는 ‘안나야 놀러 가자.’라고 하시는 거야. 놀러 가는 집들은 내가 살아오면서 나에게 도움을 줬던 집들이었어. 집안에 알곡으로 가득 차 있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왔는데 알곡은 없고 짚단 하나만 달랑 있는 거야. 내가 왜 우리 집만 이러냐고 따졌는데 그 여인이 ‘넌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한테 다 얻어먹고 살았지. 그런데 네가 남들에게 베푼 것은 짚단 하나밖에 없더구나.’ ‘짚단은 뭐지?’ 내가 한참을 생각해보니 기억이 났어. 내가 어렸을 때 앞집 송아지가 하도 울기에 우리 집 짚단을 준 기억이 난 거야. 수녀야, 어쩌면 좋냐! 난 베푼 게 없어. 우짤꼬!”


수녀님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정말 줄 사람이 없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양자가 한 명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에 들어와 비단과 돈을 훔쳤던 그 청년이었습니다. 이후 청년을 양자로 삼았었고 6년을 함께 살다가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자주 찾아오지만 자기 시부모처럼 그 아이에게 짐이 될까 봐 알리지 않고 병원에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핸드폰도 없을 때라 양아들도 연락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수녀님은 그 아들에게 전화했고 온 가족이 할머니를 보러 왔습니다. 아들은 보자마자 울면서 6개월 동안 팔방으로 찾아다녔다고, 이러신 줄 몰라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 유산을 아들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묵주를 수녀님에게도 주며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베푸는 게 이렇게 마음이 꽉 차고 기쁜지 몰랐어.”


그러며 “우리 엄마 같기도 하고 큰언니 같기도 한 그 여인이 성모님이셨던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셨고, 양아들 가족도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모두 세례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출처: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 이영숙 베드로 수녀]


안나 할머니는 어머니와 언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남편의 사랑도 받았고 어쩌면 시부모의 사랑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죽으면 썩어버릴 것을 남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은 갖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가족 아닌 이에게 내어줄 만큼의 사랑은 받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사랑이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모기 안에서 무슨 사랑이 솟아나서 서로 나누겠습니까? 분명 우리 부모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수만 명이 되는 커다란 공동체가 그렇게 서로 나누며 배불리 먹고도 음식이 많이 남을 정도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넘어서는 엄청난 사랑이 그 공동체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나눔의 공동체 자체가 사랑의 하느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의 가족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모가 있다는 증거인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작은 가족 공동체의 창조자이고 하느님은 교회 공동체의 창조자이십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수많은 부모도 포함됩니다.


제가 오산 성당에서 주임 신부를 할 때 첫 주일 헌금은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신자들은 다른 어떤 주일보다 더 많은 돈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나누어줄 돈이 흘러넘쳤습니다. 각자 사는 것이 빠듯하지만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입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힘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있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가족이 부모가 존재하고 그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나눔의 공동체인 교회 자체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사랑 자체이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도 또 다른 표징을 보이라면 이는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닌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람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가족을 사랑하게 될 수 없고, 하느님 없이 가족 아닌 사람들과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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