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체제에 불순종한 적이 없으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고자 해서 다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하고자 해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시며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에게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라고 단단히 이르십니다.
하지만 치유 받은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세상 종교나 정체 체계에 순종해야 할 분이 아니십니다.
그보다 훨씬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병 환자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치유해 주셨으면 그만이지 모세가 명령한 것에 순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도 어기고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는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셔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공동체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도 결국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분의 복음전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은총을 아무리 받았다고 해도 마지막 때에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게 됩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미국에서 10대 후반의 나이로 수표 위조 사기범으로 활동했던 현재는 한 기업의 보안 컨설턴트가 된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회고록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영화 속 프랭크 아버지는 사업가로 프랑스인 어머니와 결혼하여 프랭크를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업 중 탈세 혐의로 국세청에 고소를 당해 사업이 망하게 되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간 프랭크는 학교 학생의 텃세에 눌리게 됩니다.
프랭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기꾼의 기지를 발휘하여 프랑스어 선생 행세하며 며칠 동안 아이들에게 숙제도 내주고 텃세를 부린 학생에게 면박을 주고 또한 학교 친구의 조퇴요청서 위조를
도와주며 사기꾼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업이 망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이 싫었던 프랭크는 부친이 생일 선물로 준 25달러가 든 계좌와 수표책을 들고 집을 나오게 됩니다.
프랭크는 밖에서 버티기 위해 수표를 위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수표를 받아주지 않자 당시 항공사 팬암의 기장이 모든 사람의 관심과 혜택을 받는 것을 보고는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팬암 기장의 옷을 입고 팬암 위조 수표를 만들어 돈으로 바꿉니다.
팬암 위조 수표를 계속 만들며 돈을 쓰던 프랭크는 결국 FBI 위조 수사 전문가 칼 헨래티에게 덜미를 잡히고 뒤를 쫓기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기꾼 기술에 FBI도 농락당합니다.
프랭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똑똑한 머리로 외과 전문의 사칭으로 병원에 취직 간호사 브란다를 만나
약혼을 하고 조용히 새로운 삶을 살 결심합니다.
진심으로 2주 동안 공부하여 변호사 시험에 합격도 합니다.
그러나 FBI의 추격으로 이 결혼은 성사될 수 없었고 프랭크는 프랑스로 탈출합니다.
미국 탈출 후 프랭크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인쇄소를 차려 수표 위조하며 돈을 쓰다 결국에 체포됩니다.
프랑스에서 옥살이하던 중 칼의 노력으로 미국으로 이송됩니다.
이후 칼은 4년 동안 갱생의 시간으로 프랭키에게 그동안 쌓아 올린 위조 기술로 수표 감별사 보안 컨설턴트로 활동하게 해 줍니다.
이후 프랭크는 한 번 더 팬암 기장의 옷을 입고 도망치려고 계획합니다.
하지만 칼의 설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업무에 복귀해 현재 기업에서 연간 수백만 달러의 기술료를 받고 자신을 체포한 칼과도 친구로 지내며 산다고 합니다.
[출처: ‘캐치미 이프 유 캔’, 네이버 블로그, ‘누사에서의 욜로’]
프랭크가 수표를 위조하여 받아낸 돈은 지금 가치로는 수백억 원에 해당합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프랭크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면서 부유하게 삽니다.
하지만 법 밖에서는 어디서도 자신의 능력으로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칼이 순순히 놓아줄 때 그는 다시 돌아옵니다.
자신의 능력이 나라의 법체계를 앞선다고 생각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겸손해진 것입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야만 행복할 수 있음을 안 것입니다.
하지만 능력이 많아지다 보면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처럼 능력이 공동체의 법을 초월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은총을 받은 것보다 은총을 받은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교만해지면 은총을 받지 않으니만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겸손하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은총을 받았을 때조차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마르틴 루터는 자신이 받은 은총으로 교회의 체계를 넘어섰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실 분이셨지만 구약의 체계를 존중하셨습니다.
종교나 정치의 결정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현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이시면서도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르코 복음에서의 겸손은 공동체를 곧 하느님의 권위로 보는 것에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다고 이 세상의 공동체를 무시해도 된다고 믿는다는 것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고 하시며 자신의 나라를 지배하는 로마에도 순종하셨습니다.
이는 일본의 속국이었을 때 우리나라의 존경받는 사람이 일본에게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로 치면 매국노로 찍혀야 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노예제도에 대해 반감을 갖지 않고 노예는 주인에게 충실해지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왜 당신을 박해하느냐고 하셨을 때 그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눈이 생긴 것에서 공동체 안에 그것을 세우신 분의 권위가 들어있음을 볼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주님께 은총을 청하기도 해야겠지만 그 은총을 받았을 때를 대비하여 항상 더 겸손한 삶을 살 연습을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유재석 씨는 유명해지기 전부터 자신이 유명해지면 절대로 교만해지지 않겠다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은총을 받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주 율리아의 경우는 주님의 은총을 많이 받으면 교회의 권위도 넘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가 주님의 허락으로 세워진 것이고 그래서 그 공동체에 속해있다면 그 공동체의 규칙을 넘어서려는 마음은 갖지 않으려고 평소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주신 은총이 자신과 공동체, 그리고 오히려 주님께 손해를 끼치는 원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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