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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12 조회수 : 2972

부모의 은혜
     
  
사람들은 제 이름을 듣고 개명할 생각을 안 해보았느냐고 묻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 이름이 창피한 줄 잘 몰랐는데, 대학교 들어가니 저를 모르던 학생들이 제 이름을 듣고 일제히 웃는 것을 보고는 조금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름을 주신 부모님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름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삼형제 중 막내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부모님은 제가 딸이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런데 또 아들이 나오자 어머니도 고생해서 아이를 낳고도 인정받지 못했고, 아버지도 화가 나셨는지 
형 둘은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었지만 저는 그냥 세 번째 태어났으니 뒤에 돌림자 ‘용’과 앞에 ‘석 삼’을 넣어
‘삼용’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기가 죽어있는 상태라 말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셨습니다.
  
또한 저는 태어날 때 목 뒤에 커다란 혹이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삼형제 중 저를 낳을 때가 가장 힘드셨다고 합니다.  
 
얼굴도 얼마나 못생겼던지, 어머니는 이런 저를 안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시며 목에 붙은 혹을 제거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병원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가 태어난 이후로 집안에 우환이 가득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여러 번 크게 다치셔서 뇌수술까지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도 점점 더 가난해졌습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김원전’이라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은 ‘김’이고 이름은 ‘원’인데, 태어날 때부터 알처럼 생겨서 이름이 ‘둥글 원’입니다.
  
어머니가 어느 날 혼절하는 고통으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검은 알처럼 둥글게 생겼습니다. 
어머니도 까무러칠 일이었지만, 남편이 이를 보고나서 부인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아기는 어디 있소?”  
아마도 “도대체 ‘내가 기대했던’ 아기는 어디 있소?”라고 묻는 것일 것입니다.
  
이 소문이 퍼지게 되자, 동네 사람들 중 어떤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알에서 이무기가 나와 못된 짓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군사를 풀어 그 이무기를 죽이고, 그것을 낳은 사람도 흉악한 죄인이라 하여 빛을 못 보는 곳에 가두었다가 굶겨 죽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덕망이 높은 집안에서 저런 알이... 아니 아이가...”
  
부부가 시름에 잠겨 밥을 먹고 있는데 알이 이불 속에 있다가 굴러서 밥상 옆으로 옵니다. 
아버지가 입도 없는 녀석이 밥을 먹으려고 하니 신기해하면서 밥을 한 그릇 주어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알에서 입이 새 부리마냥 나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아내에게 밥을 계속 주라고 합니다. 
검은 알은 밥을 먹으며 몸집이 커져서 결국 다른 방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달빛을 타고 신선이 내려와 알을 깨뜨리니 알에서는 건장한 청년이 나옵니다. 
이 건장한 청년은 머리가 아홉 달린 아귀라는 괴물이 공주들을 납치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공주를 구하러갑니다. 
지하세계에 들어가니 괴물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괴물을 죽이고 공주들을 구하고 그 중 한 명과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머리 아홉 달린 아귀는 자기 자아입니다. 
자아가 그렇게 크고 대단해지면 부모님 또한 그런 모습을 하게 됩니다. 
사춘기 때는 자아가 너무 커져 부모님이 내가 넘어서야 하는 큰 괴물같이 보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박해하는 존재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아를 죽이는 날 참으로 어른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평온해지고 부모님에 대한 시선도 다시 변하게 됩니다. 
        
만약 김원의 부모님이 이웃의 말을 듣고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면 아이가 성장하여 자기 자신을 벗고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부모는 아이가 밥을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 부모가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가장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아프게 한 것만 생각하며,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춘기부터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자아라는 괴물을 죽이지 못해서입니다. 
  
저도 못난이로 태어났지만, 제 목에 난 혹에 어머니가 자주 당신 침을 발라 계속 문지르셨다고 합니다. 
그 혹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머니의 사랑은 저를 온전히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도 저희를 사랑하셔서 고생스럽게 돈을 버셔야 했지만, 저를 보며 화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사랑해주셨습니다.  
이런 부모님의 사랑이 저를 성장시키셨던 것입니다. 
물론 저를 감싸고 있는 못난이 콤플렉스는 제 스스로의 싸움이었고, 제 신앙으로 인해 달을 타고 내려오신 그 분께서 깨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 안에서 나와 나 자신과 싸워나가고 그래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까지 
성장시켜주신 분은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괴물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부모님과 조상님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차례도 지냅니다. 
부모가 없으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상님들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알 속에만 갇혀있지 않게 우리를 알 밖으로 나오게 해 주신 또 다른 부모님이 계십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해 주셨기 때문에 부모님께 더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 부모님이신 하느님과, 또한 그 분께서 우리 부모님으로 세워주신 그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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