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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02 조회수 : 2711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 봉헌 축일은 특별히 봉헌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봉헌 생활을 축성 생활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밀떡과 포도주가 봉헌되면 그것이 성체와 성혈로 축성되는 신비를 인간도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밀떡과 포도주도 사제를 통하여 제단에 봉헌되지 않으면 주님의 살과 피로 축성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아드님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가장 완전한 사제라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이 봉헌은 우리 어머니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지 그 모범이 됩니다. 자녀를 자신의 아이로만 여긴다면 자녀는 축성될 수 없어서 방황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것은 알겠는데, 아직 온전히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니라고 느껴 혼란에 빠집니다.  


온전히 자녀가 아니라고 느끼면 하게 되는 것은 ‘경쟁’입니다. 자녀들이 경쟁하는 이유는 진짜 자녀가 되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경쟁은 고통스럽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녀들끼리도 경쟁하면 그렇습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이 더 자녀답다고 그리스도와 경쟁하였습니다. 하지만 참다운 자녀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6살 여자아이 ‘프리다’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외삼촌과 숙모가 사는 시골집에 맡겨집니다. 삼촌과 숙모는 불쌍한 프리다를 자신의 딸처럼 여기려 노력합니다. 둘 사이에는 ‘아나’라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골 삼촌 댁에 맡겨진 프리다에겐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삼촌과 숙모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프리다는 사촌 동생 아나에게 자신의 인형들을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그만큼 많이 사랑받는 증거라고 그렇습니다. 사실은 아나가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을 질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리다는 서투른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흉내를 내며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엄마 담배를 성모 마리아께 바치며 엄마가 좋아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는 아직 삼촌과 숙모를 참으로 아빠와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프리다의 삼촌과 숙모는 프리다에게 잘 대해주지만 프리다는 자신의 외로움을 관심으로 채워보려 노력합니다. 신발끈을 묶을 줄 알면서도 일부러 숙모에게 묶어달라고 하고, 상추를 가져다 달라는데 아나보다 더 먼저 밭으로 뛰어가 양배추를 뜯어갑니다. 그러나 숙모는 프리다의 마음을 압니다. 목욕하며 삼촌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지만 삼촌은 아나의 머리를 먼저 말려줍니다. 냅킨을 식탁 밑으로 숨겨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삼촌과 춤을 추는 아나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프리다는 아나와 경쟁의식을 느낍니다. 아나가 놀아달라고 하는데 잘 놀아주지 않습니다. 프리다는 그런 아나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 나무 사이에 숨어있으라고 하고 집으로 혼자 돌아옵니다. 숙모가 아나를 찾지만 프리다는 숙모에게 미움을 살 거 같아서 아나를 못 보았다고 말하고 아나를 찾으로 숲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하지만 아나는 팔에 깁스하고 숙모의 팔에 안겨 돌아옵니다. 숙모는 모든 것을 다 알지만 프리다에게 혼을 내거나 소리를 치지 않습니다. 숙모에게 미안해서 화단에서 꽃을 꺾어 선물했지만 그 꽃은 숙모가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프리다는 몸이 좋지 않은 숙모 곁에서 숨을 쉬는지 코에 손을 대봅니다. 엄마처럼 숙모를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아나는 프리다가 수영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뛰어듭니다. 간신히 삼촌이 건져내어 괜찮을 수 있었지만 졸지에 모든 게 프리다의 잘못이 되었습니다.  


프리다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며 자신을 사랑해 줄 가족을 찾아 떠나겠다고 가출을 감행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아나는 “난 언니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삼촌 부부는 프리다를 찾습니다. 프리다는 어두워서 멀리 못 가고 다음 날 다시 나가겠다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숙모는 이런 프리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언의 위로를 해 줍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프리다는 조금씩 삼촌 부부의 가족이 되어갑니다.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자 프리다는 엄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숙모에게 묻습니다. 그런 것을 숙모에게 물으면 안 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숙모는 엄마가 프리다를 매우 사랑했다고 말해줍니다.


프리다는 이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삼촌 부부와 아나와 정신없이 재미있게 뛰어놉니다. 아나를 질투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이미 한 가족이 되어버린 자신을 보고는 그동안의 심경과 행복이 겹쳐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이것이 프리다가 원했던 행복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카를라 시몬 피포’ 감독이 어릴 적 자신의 경험을 옮긴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이라는 영화 줄거리입니다. 


잔잔한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주변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프리다의 눈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뒤처졌다는 느낌에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하고 질투하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해봐야 점점 주위 사랑을 잃고 더 외로워지게 됩니다. 주변인으로 사는 것은 지옥입니다.


아기는 태어나면 부모의 사랑으로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사춘기 전까지입니다. 사춘기가 넘으면 새로운 부모가 필요합니다. 그 이전에 부모는 자녀를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의 가족이 이미 되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당에 다녀도 프리다처럼 주변인처럼 살아갑니다. 뒤처졌다고 느끼고 경쟁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런 상태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경쟁상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만 채운다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족의 행복이 모든 행복의 기반을 이룹니다. 사춘기 전에는 인간의 부모가 주는 가족의 행복, 그 이후에는 하느님 부모가 주는 가족의 행복입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그런 마음으로 살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라고 자녀들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자녀를 봉헌하지 않는다면 자녀의 인생은 프리다의 여름처럼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드님을 하느님께 바로 봉헌하신 성모 마리아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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