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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1-29 조회수 : 3014

사람은 꼭 성장해야만 하는가? 
  
오늘 복음은 어제 ‘등불’이 있는 공동체의 필요성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빛은 진리입니다. 공동체마다 진리를 품은 정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 진리는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공동체에 어느 만큼의 진리가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장에도 차이가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진리와 은총이 충만한 공동체에 머물면 저절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도 오직 당신의 제자들에게만 따로 풀이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머물면 그 충만한 진리로 사람이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왜 굳이 그런 공동체에 속해서 내가 자라나야 하는가?
그냥 살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합니다.
성장과 성숙이 의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으면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칩니다. 
 
지하철은 우리 일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지하철에서 한 할머니가 한 아이의 머리를 만졌다고 아이의 엄마가 할머니에게 욕을 하며 폭행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또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20대 청년이 80대 할아버지가 불편하다고 말을 하자, 할아버지에게 폭언을 퍼붓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한 할머니에게 욕을 하며 목을 조르는 등의 폭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나이가 어려 처벌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물의를 일으키는 당사자들은 ‘내 맘대로 사는데 뭔 간섭?’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은 둘째 치고 본인들은 행복할까요?
이들은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 피해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의 몫이 됩니다. 
 
영국의 한 TV 채널에서 ‘5일간의 격리’란 실험을 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독방에서 5일간 견뎌내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실험입니다.
실험에 5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들이 들고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은 3개로 제한되었는데 전자제품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독방은 감옥 같지는 않고 웬만한 원룸 오피스텔 방보다 좋습니다.
제 때에 식사도 푸짐하게 제공되었습니다. 
 
참 쉬워 보이는 도전인데 실상 다섯 명 중 끝까지 견뎌낸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했습니다.
참가자 중 한 명인 28세의 샤르마인은 겨우 4시간 만에 독방 생활을 포기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였던 TV 진행자 조지는 정확히 24시간 만에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고독과 권태감, 그리고 불안감을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특히 고립된 상태에서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매우 괴로웠다고 털어놨습니다. 
 
실험의 최종단계에 진출한 사람은 로이드, 루시, 사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사라는 72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환각을 보고 혼잣말을 시작했습니다.
로이드는 카메라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군가가 아니면 적어도 어떤 것과도 소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루시는 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잣말하거나 환각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어렵지 않게 5일을 잘 견뎠고 방은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출처: ‘인터넷 없이 독방에 5일 동안 갇힌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 유튜브 채널 ‘모든 사람’] 
 
독방도 사실 우리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인생이 지하철처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각자 자신의 독방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면 삶은 지루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루가 왜 이리 기냐고 투정하면서 그 따분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극적인 일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그 자극은 점점 더 강해지지 않으면 소득이 없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렇게 자신과 사회를 죽이는 사람이 됩니다. 
 
5일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육체적 본능과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장은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과정입니다.
본래 있던 자리에서 탈출하여 자신에게 햇빛과 물을 주는 하늘로 향하는 과정이 성장입니다.
하지만 세속-육신-마귀의 본성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그것들을 주는 스마트폰에 머리를 들이박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각자의 독방에서 힘든 고독에 지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간신히 5일을 견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타인과의 관계 단절을 힘들어했습니다.
관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신 인생의 따분함을 채워나갑니다.
자신의 심심함을 채우려고 타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시는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창조’하는 데 썼습니다.
그림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물입니다.
창작은 창조이고 창조는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본성이 지배하는 공동체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에서 그녀는 성장하였고 성숙하였고 자신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삶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자신과 이웃을 만족하게 하는 삶을 삽니다. 
 
공동체 안에는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등불이 있습니다. 이 등불은 진리이고 뜻입니다.
그 뜻이 자기 자신을 이기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공동체에 머무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자기 손해이고 세상의 피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상 대대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란 건국이념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이념이 한 공동체의 빛이 되면 그 공동체에서 그 이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견뎌낼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념을 따르지 않는다고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여 사람에게 이롭지 않은 일을 했다면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머물면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장하지 못하면 스스로 공동체에서 퇴출당해야 합니다. 
 
마더 데레사가 등불을 켜 놓고 간 집에 살고 있었던 청년은 그 등불 때문에 삶이 변했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는 그리스도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리의 등불이 있습니다.
그 등불 때문에 우리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왜 꼭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행복’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면 할 말은 없지만,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를 성장시켜 줄 진리의 빛, 좋은 뜻이 지배하는 공동체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뜻은 ‘사랑’입니다.
인간 육체적 본성과 반대이기 때문에 올바른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등불인 공동체에 머물면 자신도 저절로 성장하게 되고 행복도 함께 증가하고 주위 사람들도 함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가장 완전한 공동체가 가톨릭교회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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