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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24 조회수 : 2709

사람 낚는 어부들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 지배받는 나라입니다.  
 
사람은 하느님께 지배받지 않으면 악령에 지배받게 됩니다. 
하느님께 지배받으면 하느님 나라에 살고, 악령에 지배받으면 지옥에 삽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중국 후배이성. 11층에서 떨어지는 여성을 맨손으로 받아내려던 남성이 있습니다. 
펭닝이란 이 남성은 충격에 얼마 동안 쉽사리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청년의 다리는 부러졌고 인대가 손상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성은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펭닝은 정신을 차린 뒤에도 자신의 몸보다는 여성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청년은 말합니다. 
 
“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여성분을 구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 이야기를 11층에서 떨어지는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동영상이 있어 소개합니다. 
 
“10층에서는 금실이 좋고 화목했던 부부가 싸우는 게 보였고 
9층에서는 밝고 유쾌하고 잘 웃던 남자가 우는 게 보였습니다. 
8층에서는 남자들과 말도 하지 않던 여자가 바람피우는 게 보였고, 
7층에서는 건강하기로 소문났던 여자가 약 먹는 게 보였습니다. 
6층에서는 돈 많다고 자랑하던 남자가 일자리를 찾는 게 보였고, 
5층에서는 듬직하고 정직했던 남자가 여자 속옷 입는 걸 보았습니다. 
4층에서는 닭살 커플로 엄청나게 사랑했던 연인이 헤어지려고 싸우는 걸 보았고, 
3층에서는 남녀관계가 복잡하다던 할아버지가 혼자 지내는 걸 보았습니다. 
2층에서는 이혼하고 남편을 욕했던 여자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걸 보았습니다. 
 
11층에서 뛰어내리기 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사람마다 말 못 할 사정과 어려움이 다 있었네요. 
사실 내가 너무 불행한 건 아니었군요. 
내가 보았던 사람들이 지금 나를 보고 있네요. 
그들도 나를 보며 자신들은 괜찮다고 자기 위안을 하겠죠.”
(출처: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느낄 때」, 감성힐러 JAy, 유튜브) 
 
 
이 세상에서의 지옥은 아무래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올 수도 있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사는 것이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겉만 보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들이 위로를 얻으려는 방법이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삶이 이렇게 남과 비교하고 힘들어지는 이유는 이 세상의 욕망에 지배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갈 때를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았겠고 자신보다 많이 잡고 더 큰돈을 버는 사람을 부러워해야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 자신의 배 밑에 물에 빠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전재용 선장이 참치보다 96명의 베트남 선상 난민을 건져 올렸던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건져 올릴 때 물고기는 더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어지고 그래서 우울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떨어지는 여성을 구하려다 몸을 다치고도 구하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펭닝과 같습니다. 
 
펭닝 주위엔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자신은 자살한 여자보다 행복하다는 위안을 받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또 누군가와 비교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사랑이란 힘에 지배받기 전까지는. 
 
며칠 전 바다까지 얼어붙은 추운 날씨에 배에서 일하던 한 작업자가 바다에 빠졌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배의 한 선장은 긴 막대를 이용해 익수자를 구하려 했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명튜브를 던졌지만 역시 익수자는 그것을 잡을 수 없었고 계속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배에 손짓했지만 보지 못한 것인지 그냥 지나칩니다. 
 
이 남성은 한참을 망설입니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바다에 뛰어듭니다. 
익수자의 몸을 바치고 한참을 물에 떠 있던 남성은 해경에 도착한 뒤에야 물 위로 함께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엔진을 수리하고 있던 김인학 선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려주소, 살려주소.’ 하는 소리가 나서 뛰어나오니까, 
사람이 곧 (물속으로) 내려갈 그런 상황이다 보니까, 제가 생각도 못 하고 (바다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김 선장은 어깨 수술을 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물속에 바로 뛰어들지 못한 것에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구조된 남성은 김 선장에게 고맙다고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몸을 던져서 도와주는 게 대단하신 것 같고, 
저도 본받아서 그런 일이 생기면 사람을 도와가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얼어붙은 겨울바다에 ‘풍덩’ 익수자 구한 선장」, UBCUHDTV, 유튜브)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함하여 우리를 구하신 분이십니다. 
생존 욕구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웃의 영혼을 구하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저절로 물속의 고기는 관심이 줄어들고 함께 빠진 사람들에게 눈이 더 갑니다. 
그리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전 삶이 지옥이었고, 이것이 하느님 나라구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낚는 사람이 될 것입니까, 물고기를 잡는 사람으로 남겠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을 잡다 보니 물고기도 걱정 없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전재용 선장은 베트남 96명을 구해주어서 직장을 잃었지만 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엔 조금 고생했을 수 있겠으나, 하느님께서 지켜주셨고 나중에는 그들이 미국으로 초대하여 큰 영광과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물고기 잡는 어부입니까, 아니면 사람 낚는 어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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