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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1-07 조회수 : 2019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복음: 루카 4,14-22ㄱ 
 
경쟁의 허용이 괴물의 세상을 만드는 이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소명’(召命)을 공적으로 표현하시는 내용입니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지만 ‘당신이 깨달은 하늘의 뜻’(知天命)을 공표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서에서 이 구절을 찾아 회당에서 읽으심으로써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을 공표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지니고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누구나 이 사명을 물려받습니다.  
 
성모 마리아나, 세례자 요한, 또 사도들은 모두 이 사명에 결합한 이들입니다.
이는 믿음을 가지면 우리 모두가 주님의 계획안에서 어떠한 사명을 지니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사명과 반대되는 개념이 있는데 ‘꿈’(이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꿈’(dream)과 ‘소명’(vocation)은 반대말입니다.
창조될 때부터 주어진 사명을 ‘소명’이라 한다면, 자기 자신이 이루고자 정한 것을 ‘꿈’이라 합니다. 
 
소명, 즉 하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이들은 분명 자신이 선택한 꿈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명도, 꿈도 없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꿈을 좇는 사람은 세상에서 ‘괴물’이 되고, 소명을 찾은 이들은 그런 괴물에게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명을 성취하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꿈과 소명은 상반되고 살아가는 각자의 이유가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괴물 한 명을 생각해 봅시다.
히틀러는 분명 괴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랑 대신 폭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바닥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예외 없이 ‘경쟁’을 통해 그 열등감을 극복하려 합니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대학 입학시험을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좋은 평을 받게 되고 정치로 나아가서는 더 좋은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쟁’을 통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게 만드는 전쟁을 시작한 괴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됩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열등감을 가지게 되고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꿈을 가지게 되며,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경쟁에 뛰어듭니다.
그런데 그 꿈이란 것이 결국엔 자신 안에 있는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무작정 꿈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좇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그들 모두가 작거나 크거나 괴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나라에서 웹툰으로 그린 이가 있고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 지금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홈’입니다.  
 
이 드라마는 잔인한 괴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괴물이 된다는 설정을 ‘욕망’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 욕망에 자신을 맡긴, 그 욕망을 꿈으로 실현하는 이들은
타인을 죽이는 괴물이 됩니다.
이 괴물들은 남의 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괴물, 힘으로 타인을 눌러버리는 괴물, 자신의 것을 쌓아놓는 괴물들로 나뉩니다.
이것을 만든 작가도 몰랐겠지만 그 괴물들은 결국 삼구에 자신을 맡겨버린 이들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그 욕망을 절제하는 인간들이 생겨나는데
그들은 그런 욕망을 지닌 괴물들에게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자신들 안에 분명 그런 욕망이 있지만, 그들은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경쟁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이들입니다.  
 
그중 ‘현수’란 캐릭터는 경쟁에서 도태되어 세상에서는 자살밖에 할 것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이미 그는 세상의 경쟁에서 아무 꿈도 꿀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아파트의 주민들을 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좋은 사람들은 다 사회 경쟁에서 도태된 인물들입니다.
더는 세상에서 삼구를 추구할 수 없는 상태의 인물들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소명을 공표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하신 일이 광야에서 삼구(三仇)의 유혹을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돈도, 쾌락도, 명예도 아니면 세상에서 무엇을 추국해야 할까요?
바로 그런 것들을 좇는 이들로부터 피해를 보는 이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소명은 꿈을 좇는 세상의 경쟁적 분위기에서 물러나 그 반대로 향할 때 찾게 됩니다.
마더 데레사나 이태석 신부님도 모두 그런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한발 물러섰기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바치며 추구해야 할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굳이 이런 분들만이 아니라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의 거부들도 경쟁 속에서 성공은 했지만, 그들은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것보다는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오다 보니 성공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가진 재산 전부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속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꿈을 찾으라고 하고 그 꿈을 추구하도록 경쟁시킵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그것에 많은 학원비까지 써가면서 아이들을 삼구의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먼저 자녀들에게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괴물들의 세상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학교가 이런 욕망을 제어하고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게 만드는 곳으로 바뀌게 해야 합니다.
꿈이 아닌 소명을 좇는 아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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