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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7 조회수 : 1719


성가정은 석탄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곳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의 구성원은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 아드님의 양부, 이렇게 셋입니다. 

어마어마한 집안입니다. 

이렇게 세 분이 모두 엄청난 분들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세 분이 가정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모두 무엇이 되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그릇입니다. 

예전에 철로 금을 만들려는 등의 연금술이 성행했는데, 어떠한 재료에 그렇게 변형될 수 있는 촉매제와 결합하는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그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우선 사람이 어떻게 변하고 성장하고 완성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는 석탄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석탄의 원소 구성은 매우 2차원적이기에 불안정하고 다이아몬드의 탄소 원자는 3차원적으로 매우 결속력 있게 뭉쳐져 있습니다. 

2차원적인 분자구조를 변형시켜 3차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석탄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3천℃ 이상의 열과 3만 기압 이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우선 3천도의 열과 3만 초고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대부분 물질은 이 열과 기압을 버텨낼 수 없습니다. 

지하 200km 이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또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일을 해냈습니다. 

1955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탄소를 이용해 인공다이아몬드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공다이아몬드는 현재 유리 칼이나 다른 금속재를 깎는 연마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자연산보다야 그 아름다움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흑연과 같은 것으로 보석과 버금가는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고 있기는 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석탄으로 태어납니다. 

하느님 자녀의 모습을 잃었지만, 그 가능성만은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다시 하느님과 닮아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열과 압력이 필요합니다. 

 

‘열은 은총’이고 ‘압력은 진리’입니다. 

‘은총은 사랑이고 진리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은총과 진리가 인간 분자구조를 바꾸기 위해 생성하는 힘은 ‘믿음’입니다. 

 

항상 예로 드는 것이지만, 늑대에게 자란 아이를 생각해봅시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아직 석탄의 상태입니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아직 인간이라는 믿음이 생성되지 않았기에 인간이란 분자구조를 가질 수 없습니다.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이상 그 아이는 절대 두 발로 걷는 일은 없습니다. 

몸만 인간이지 본성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늑대 가운데 살고 있다면 절대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늑대라는 믿음을 이미 실현하였기에 행복합니다. 

인간 눈으로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인간에게 발견된다면 인간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과 가르침, 즉 은총과 진리가 3천℃, 3만 기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아이는 바뀌지 않습니다. 

분자구조를 바꿀 믿음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발견된 늑대에게 키워진 이 아이들은 인간이 되지 못한 채 그 스트레스로 사망하였습니다. 

머물기는 하되 그들의 믿음을 바꿔줄 사랑과 가르침이 그 정도를 채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인간이 되려면 그 아이들의 친부모와 버금가는 사랑과 가르침을 지닌 공동체를 만나야 합니다. 

그 공동체가 3천℃의 사랑과 3만 기압의 가르침을 가졌다면 그 공동체의 모든 인간은 반드시 자신들이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공동체가 이 아이들을 참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석탄을 보석으로 만드는 그릇입니다. 

 

이런 면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참 인간으로 만들어줄 부모를 만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내가 낳은 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는 이유가 이것일 것입니다. 

믿음을 생성할 온도와 기압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들 손에서 큰다면 그곳에서 머무는 것은 그저 허무한 고생일 뿐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석탄에서 보석으로의 새로운 창조가 이뤄지는 공동체이고 그래서 부모는 이 세상의 작은 하느님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가정은 이보다 더 나아갔습니다. 

어머니가 하느님을 낳은 어머니란 믿음을 지니신 분입니다. 

다이아몬드보다 위의 단계가 있다면 바로 성모 마리아가 그런 분이십니다. 

여기서 실제로 새로 태어나는 분은 예수님이라기보다는 요셉 성인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가 여보, 또 아버지라 부르는 그 분위기에서 산다면 요셉 성인도 바뀌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 부모가 자녀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강한 자녀들 속에서는 그 사람이 부모라도 자녀들의 믿음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믿음으로는 자녀가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 안에서 보석의 가능성을 보아야 하고, 교회는 새로운 가정으로서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 자녀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합니다.  

 

교회 자체가 자신을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면서 신자들 가정에서 자녀를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가정이 참 인간이 태어나는 곳이라면 교회는 참 하느님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인간의 자녀들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새고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성가정은 한 가정의 믿음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교회 또한 어떤 믿음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그 온도와 압력을 품을 수 있는 수준이 안된다면 그 가정이나 교회는 누군가를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 

고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머물기만 한다면 석탄과 같은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만드는 다이아몬드 제조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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