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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4 조회수 : 1570

12월24일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 

 

복음: 루카 1,67-79 

 

우리는 모두 만나는 이들의 미래를 예언한다 

 

 

오늘 복음은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즈카르야는 입이 풀리자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을 합니다.

즈카르야는 요한을 바라보며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가 그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아버지의 예언대로 위대한 예언자가 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요한의 아버지보고 요한의 미래를 예언하도록 하셨던 것일까요?

아버지의 예언이 없다면 예언자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되기야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믿어주는 사람들 안에서 더 쉽게 그렇게 됩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아버지가 의심하면 아들도 의심하기 쉽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은 바로 자신이 누구냐는 ‘믿음’에 의해 생깁니다.

만약 부모님이 자녀들의 미래를 의심하면 자녀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즈카르야가 의심할 때는 입을 다물도록 벙어리가 되게 하였다가 믿음이 생기자 입이 열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정체성을 예언하는 예언자들입니다. 

 

뭔가 유치한 구석이 많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허큘리스’(2014)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신적인 힘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허큘리스는 이 신화적 인물 헤라클레스를 재해석한 영화입니다. 

 

신화에서는 네메안의 사자와 지옥의 개들을 물리친 괴력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평범한 인물로 나옵니다. 평범하지만 물론 힘은 좀 셉니다.

그가 평범한 인물로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이 헤라클레스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죽임을 당하는 데 아무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가족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헤라클레스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저 돈을 위해서 싸워주는 평범한 용병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의 소문을 들은 이웃 나라 트라키아 공주가 찾아와 레수스라는 왕국과 전쟁을 벌이는데

도와주면 충분한 보수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돈을 벌기 위해 트라키아 군대들을 훈련하고 전쟁에 나가 트라키아 왕을 위해 싸워줍니다.

하지만 사실 트라키아 왕 코티스는 진짜 왕을 죽이고 남은 반란군들을 제압한 후 자신이 왕이 되려고 헤라클레스를 돈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좋은 이들을 자신이 죽게 만들고 악한 사람을 도와준 것에 분하여 그들에게 대항하려 하지만 그들의 덫에 걸려 갇히고 맙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료들이 죽음 직전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죽은 이유가 아테네 왕이 그를 시기하였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그가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자기보다 유명해진 아테네 왕이 그의 술잔에 약을 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 모든 사실을 아는 동료는 그에게 소리칩니다.

“넌 누구지? 무고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 아니면 그 전설 속의 진짜 영웅이야?

너 자신을 믿어. 네가 누구인지 기억해. 어서 말해. 넌 대체 누구야?”

“나는 헤.라.클.레.스.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지 뻔합니다.

좀 닭살이 돋는 전개가 되는 영화이지만, 이 대목이 마음에 들어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 믿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위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 의해 그 믿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나의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도 아버지의 예언이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잘 보여줍니다. 가난한 아빠가 로버트 기요사키의 친부입니다.

박사학위까지 있지만, 항상 가난했고 자녀에게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지 않으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예언입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아들도 직장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요사키는 그 아버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다행인지 키요사키는 부자들만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믿음으로는 다른 아버지를 선택합니다. 친구의 사업가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친구 아버지는 학위도 없는 사업가였지만 돈에 대해 가르쳐주었습니다.

돈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월급쟁이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요사키는 상반되는 두 아빠 중 누구의 말을 믿었을까요? 부자 아빠의 말을 믿었습니다.

자신 주위에는 부자 아빠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인도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예언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믿음이 그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선택은 그 사람이 하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그렇게 믿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면 그 사람은 그 믿음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그런 사람이 되고야 맙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과 가까운 다섯 사람을 말해보세요.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주위 사람들의 믿음이 그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고 말해주지 못할 바에야 즈카르야처럼 벙어리가 되는 편이 낫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 입을 여셔서 우리가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예언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의 예언자, 내가 만나는 이들의 예언자임을 잊지 맙시다.

나의 모든 말은 누군가에게 예언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의 정체성에 대해 좋은 예언을 하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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