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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2 조회수 : 1670

12월22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46-56

나는 왜 기쁜가? 나의 완성됨으로 부르는 노래, 마니피캇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마티피캇’을 노래하시는 장면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 노래는 성모님 생애에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오늘 성모 찬송은 인간이 어떤 때 궁극적 기쁨을 누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우리 각자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궁극적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돈 많이 벌어 빨리 은퇴하여 슬슬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이 궁극적 행복일까요?

돈이나 쾌락, 명예는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들입니다.

몸은 행복할 수 있으나 성령께서 함께하실 수 없기에 마음은 공허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가장 행복하도록 창조되었을까요?

분명 제대로 뛰고 있다면 결승전을 통과하는 것처럼 인간의 창조 목적이 완성되는 때는 인간 창조가 완성되는 때일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미완성의 행복만을 누립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주님을 찬송할 때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인간의 완성 시점을 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지향하신 무언가가 성취되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완성은 바로 이 창조된 우리 자신이 성취되는 때이고 이때 참 기쁨을 누리고 참 찬미가 솟아나게 됩니다.  

 

그것이 언제일까요?

주님을 만나는 때? 그것보다 더 가야 합니다. 

 

유튜브 채널 ‘ODG; 입양 가족의 과거 사진 같이 보기’에 입양된 아이와 엄마가 현재 사진부터 시작하여 입양할 당시의 과거 사진까지 함께 보며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엄마랑 오늘 함께 동하(7세)와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 같이 볼 거야.

엄마는 집에서 주로 뭐 하는 거 같아?”

“밥하고 우리 씻기고 우리 재우고 영어 공부하고 ... ”

“그럼 이제 함께 사진 볼까? 이거 기억나?” 

 

2020년 초밥 식당에서 엄마와 남동생 동주(4세)와 함께 먹는 사진이 나옵니다.

“어!”

바나나 인형을 입은 엄마와 동하와 동주.

“웃기지?” 

 

조금 더 어린 동하가 아빠 자동차 세차하는 거 도와주는 사진.

“동하 세차 엄청나게 잘하는데. 엄마 이거 동영상 찍어놓은 것도 있어. 어땠어?”

“그때 아빠 도와주어서 기분이 좋았어!” 

 

동하가 유치원에서 공연하는 모습.

“엄마는 저 때 동하밖에 안 보였어. 너무 예뻐서.” 

 

아빠가 두 아이를 함께 업고 있는 사진.

“너희 둘이 합치면 거의 40kg이야. 아빠 무겁겠다.” 

 

사진이 점점 뒤로 가면서 동하와 동주는 계속 어려짐.

“동하, 동주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싸웠지?

동주가 동하 장난감 다 가지고 싶어 했지. 그래서 동하가 진짜 양보 많이 했는데. 그치?” 

 

2017년 둘째(동주) 입양 사진.

“동하, 혹시 동주 만났을 때 기억나니? 어떤 것들이 기억나?”

“동주 얼굴 봤을 때랑 동주가 나 안아주었을 때. 가장 기뻤어.”

“아, 진짜? 엄마는 그게 동주한테 좀 슬픈 순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동하 처음에, 동주 오고 나서, 동주가 너무 아기니까 동주만 막 안아야 하고 동주만 챙겼었잖아.

그래서 동하가 질투가 났을 것 같은데 어땠어?”

“마음이 조금 속상했어.” 

 

“그런데 동하가 동주 안아준 이유가 뭘까?”

“동주 좋아서.”

“조금 속상하지만, 동주 좋아?”

“응!” 

 

“동하는 왜 동주만 좋아해 주냐고 그랬잖아.

근데 동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하가 있을 때는 동하한테만 잘해줬어.

동하만 데려 다니고 동하만 예뻐해 주고 동하만 재워주고.

왜냐하면, 동주가 없었을 때는 동하 혼자만 있었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해변에 밥 먹으러 가는 사진이야.

동주가 사랑 독차지할 때.

저거는 디즈니랜드 갔을 때야. 동하가 이거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

혹시 동하가 기억 못하더라도 이런 사진 보면서 엄마 아빠가 동하만 엄청나게 사랑했던 때가 있었다는 거 기억하라고 사진 찍어놓은 거야.” 

 

2014년 동하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

“동하 아빠, 엄마 처음 만났을 때 기억 안 나지?

엄마가 어떻게 만났는지 좀 설명을 해 줄게.  

 

엄마가 제일 기억나는 거는. 동하 위탁 어머니가 동하를 건네주기에 엄마가 동하를 안았는데 동하가 엄청나게 울었었던 거 같아(엄마 약간 그때 기억하며 훌쩍임).

... 엄마는 그때 동하가 우는 것도 예쁘다고 했던 것 같아.  

 

엄마가 갑자기 엄마가 되어서 아기를 볼 줄 몰라서 할머니 집에 아빠랑 같이 3개월 살았었는데,

할머니가 뭐라 그랬느냐면 ‘네가 아이를 낳아도 동하보다 예쁜 아이는 못 낳는다’라고 하셨어.  

 

이거는 동하 돌 때 사진.

이거는 동하 오고 나서 첫눈 올 때 찍은 사진.

동하한테 첫눈 보여주고 싶어서 옷 둘둘 싸매서 밖으로 나갔던 거야.

끝났어.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음…. 엄마가 나 이렇게 잘 키워줘서 고마워! 엄마 좋아!”

엄마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림. 서로 안아 줌. 

 

“엄마는 동하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동하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시간이 없어.”

“엄마랑 오래오래 함께 잘 살고 싶어.”

“엄마도. 엄마 건강해야겠네.” 

 

엄마의 눈물은 동하의 행복과 감사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행복하게 해 주고 또 엘리사벳의 감사를 받았을 때와 같습니다.

행복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넘어서서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때 참으로 찾아옵니다. 

 

아담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라고 창조하셨고, 하와는 아담의 도움이 되라고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죄는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 타인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존재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미하게 되는 이유는 원죄에서 회복되어 내 존재 자체가 이웃을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을 찬미할 때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잉태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벳을 행복하게 해 주고 그것에 감사를 받았을 때입니다.

인간의 충만한 완성의 순간이기에 행복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행복과 찬미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웃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저절로 나옵니다.

그때 성모님과 함께 참으로 마니피캇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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