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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6 조회수 : 1605

12월16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7,18ㄴ-23 

 

공부 잘하는 가장 완전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며 예수님께 이렇게 물어보도록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 말씀만 보면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할 때는 그분 위에 성령께서 머무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은 아직도 예수님께 가지 않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예수님을 보고 나서 자신에게 증언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라고 하시며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라고 하십니다. 

 

요한의 제자들 교육방법은 자신이 의심을 버리고 믿는 것을 넘어서서 누군가에게 그것을 증언함을 통해 그 믿음을 증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무언가 배울 때보다 그 배운 것을 남에게 전해줄 때 더 확실히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의도를 아시고 또 그렇게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시며 요한 제자들의 믿음을 키워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습니다.

무엇을 알아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성당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수법을 배웠습니다.  

 

어려운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하고 예화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알아야 가르치니까, 더 많이 알기 위해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를 사제가 되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가르치면서도 아이들의 순수함을 더 배웠습니다. 

 

신학생 때는 똑똑한 신자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성경을 수십 번 읽어서 너덜너덜한 것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저는 그런 내용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신학생 때 어떤 교수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밖에서는 대학원까지 나오면 그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됩니다.

그런데 신학교 7년을 하고 나와도 성경을 신자들보다 더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신자들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게 됩니다. 

 

사제가 되니 신자들은 물론이요, 주일학교 교사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교리교사로부터 혼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 신앙학교 때 제가 교사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저는 게으름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그 교사는 화가 나서 자식이 사제가 된다고 하면 혼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사제에게 실망한 것입니다.

행동도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제자에게 자기 머리를 밟으며 “교만한 아우구스티누스야!”라고 세 번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공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가 흙이 들어간 밥을 먼저 먹는 것을 보고 알지도 못하며 화를 내서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할 때 제자보다 스승이 더 부끄러워집니다. 

 

교수가 되니 기대치가 더 높아집니다.

어떤 사제는 ‘공부하고 들어와서 얼마나 하나 보자’는 식으로 말합니다.

또 ‘누구는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뭐 하는 게 없어’라며 저에게도 부담을 줍니다.

교리, 성경, 영성 등에서 사제들과 수도자들, 신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들을 가르쳐도 교구에서 교리나 성경을 가르치는 봉사자들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미 귀가 고급이 될 대로 고급이 되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가는 따분해하기 일쑤였습니다. 

 

만약 제가 강론을 꾸준히 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공부해도 지금보다는 낫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억지로라도 전해주기 위해 묵상하고 또 좋은 예를 찾으며 저 또한 더 큰 확신으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혼자라면 절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에게 가르치며 더 명확히 알게 됩니다.

스승이 되어야 더 배웁니다. 

 

저는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졌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느님도 참 아버지이심을 의심할 때 이 세상에서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행복하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남에게 그 믿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던 아이들은 항상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잘 알려주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묻지 않으면 자신의 필기를 다 지우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스승이 되어 알려주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칠 때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우리를 파견하셨습니다.

스승이 되라는 뜻입니다.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아는 것을 더 명확히 알기 위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복음도 전하려 할 때 더 확신하게 되고 그러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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