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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4 조회수 : 1540

12월 14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오 21,23-27 

 

어떠한 사람을 봉사자로 뽑을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것에 대해 사제들과 원로들이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예수님은 성전에서 정식적으로 교육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상인들을 쫓아내고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신 것에 열이 받은 것입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교회에서 어떠한 공식적 교육도 받지 않은 신자가 본당 신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여

자신이 본당 신부처럼 가르치는 격입니다.

당연히 사제가 좋아하겠습니까?

“어디 신학교 나왔습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유다 지도자들은 자신들끼리 상의합니다.

만약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면 왜 요한이 증거하는 당신을 믿지 않느냐고 할 것이고,

그렇다고 군중이 그를 예언자로 여기기에 사람에게서 온다고 말하기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들 대답은 “모르겠소”입니다.

예수님도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십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소위 가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상황에 따라 아는 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학벌이나 전통을 중요시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가식적으로 된 이유는 세상에서는 인정받았을지 몰라도 하느님께는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방법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또 다른 말로 ‘인정’입니다.

성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학교에서는 인정받지만, 집에 들어와서 부모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런 아이는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밖에서 들통날까 봐 두려워 가식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밝은 면’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가식적인 사람의 12가지 징후’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어떠한 모습을 보이는지 여러 가지 나타나는 행동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1.가식적인 사람은 타인의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둡니다.

오늘 유다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이들은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가식적인 사람은 남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들이 막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강요하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3.가식적인 사람은 타인들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그들의 인정은 외부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인정받은 이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4.가식적인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자신이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지 남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틀린 것을 깨닫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5.가식적인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성령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에 대한 무한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6.가식적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의 거짓말입니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7.가식적인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 관계를 맺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관계도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것이라 여깁니다. 

 

8.가식적인 사람은 타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합니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열등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끌어올리려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9.가식적인 사람은 작은 문제를 큰 것처럼 과장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해결하려는 자신의 업적이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이 큰일이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10.가식적인 사람은 남을 험담합니다.

반면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타인의 단점을 덮어줍니다.

성령은 또한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11.가식적인 사람은 행동이 일관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감정에 휩쓸립니다.

성령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사랑과 기쁨과 평화, 절제와 친절의 행동을 합니다. 

 

12.가식적인 사람은 꼭 필요할 때 사라집니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합니다.

자신은 전혀 피해 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서 봉사자를 뽑을 때 그 사람이 진정 성령으로 사는 사람인지, 가식적으로 자신의 성취를 위해 봉사를 하려는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100% 가식적이거나 진실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칫 가식적인 사람들로 봉사자 대부분이 꾸려진다면 그 공동체는 매우 힘든 상황을 겪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유다 지도자들처럼 외적인 인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뽑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인정받은 것에 감사해서 그 보답으로 조금이라도 봉사하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성령강림을 통해 세워진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에 가까운지, 아니면 당시 가식적인 유다인 공동체에 가까운지 항상 살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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