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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2-01 조회수 : 1320

12월1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0,21-24 
 
내가 하는 선행, 철부지가 하는 선행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님도 “철부지 어린이”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으셔서 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철부지라고 하는 대상은 또한 지금까지 복음을 선포하고 온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주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보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오늘 이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철부지들이 받는 상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그 복음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기에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통로인데 그 통로는 내가 주는 것으로 차게 되어있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요즘 남을 행복하게 하려다가 많은 이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혜민 스님’입니다.
이분은 자신이 깨달은 행복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전해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전해주는 행복이 자기 생각에 오염이 되고 말았습니다. 
 
혜민 스님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무소유가 가능하셨던 것은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나 주지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살 수 있어야, 그리고 또 어느 정도 베풀 능력이 되어야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도 가능해진다.” 
 
무소유가 행복임을 주장하였지만, 점점 돈이 많아지자 무소유라는 개념을 자신의 식대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모든 인세를 대학생들 등록금 후원하는 등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인은 진정 가난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어떤 유튜브 분석을 보니 근 10여 년간 혜민 스님은 책 인세 약 50억, 강연 약 50억, 애플리케이션 등 부수입이 약 50억 정도 벌었다고 합니다.
기부 형식으로 받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세금도 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자신이 주지로 되어있는 절의 소유로 된 건물에 살면서 세 들어 산다고 말하며 4억이 넘는 외제 차를 탄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쓰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평소에 무소유를 주장하며 많이 갖는다고 행복한 것이 아님을 강연 때마다 하고 다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에 그를 믿었던 많은 사람이 분노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은 혜민 스님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의 복음을 전함이 아니라 마치 철부지 어린이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부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부모의 행복을 위해 공부하기 싫어도 공부하러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부모가 좋아하면 부모를 더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 삶이 나중에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바탕이 됩니다.
이것이 큰 가치를 만듭니다. 
 
어떤 유튜브에 보니 이런 모습의 혜민 스님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종교인을 소개하는데 성남에서 무료급식소와 안나의 집, 청소년 쉼터 등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가 나왔습니다.  
 
김하종 신부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해 30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난독증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커서는 사제가 되어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해주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오래된 다마스 차를 끌고 다니며 남들에게 구걸해가며 노숙자들과 가출 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문을 닫는 급식소가 늘어나자 더 많은 이들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안나의 집을 찾습니다.  
 
안나의 집도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봉사자도 줄고, 후원도 줄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든 것은 동네를 노숙자들로 더럽힌다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의 민원과 항의입니다.
그런데도 꿋꿋이 매일 도시락을 700여 분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일기 형식으로 적은 책,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에서 김하종 신부는 가난한 이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의 아픈 상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자신의 무언가를 전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런 행위가 그리스도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주려는 노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철부지 어린이입니다.  
 
그리스도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밤마다 몸이 부서질 듯 아프기도 하지만 또 친구들이 도시락을 받아가는 것을 보며 매일 행복해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는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하는지가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참 행복으로 이끄는 것인지, 안 좋게 끝나게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철부지 어린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으면 오류에 빠지고 오염된 복음을 전하다 자신도 오염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하여도 나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것을 받아서 나누는 철부지 어린이여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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