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복음: 마태오 4,18-22
얼음은 얼음을 녹이지 못 한다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성 안드레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사도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첫 두 제자 중 하나가 됩니다.
분명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무언가 배웠을 것이고 그 단계를 넘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변화된 모습은 순교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를 선교하던 안드레아는 엑스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보통 십자가에 못이 박혀도 며칠은 산다고 합니다.
만약 물을 주면 더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안드레아 사도는 십자가에서 일주일 넘게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이 증언에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총독은 창으로 찔러 더는 설교를 못 하게 했습니다.
안드레아 성인이 한 설교 중에 이 십자가에서 한 설교가 가장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감동적인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이 있고 같은 말이라도 잔소리로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왜 어떤 힘이 있고 어떤 말엔 힘이 없을까요?
예수님은 안드레아 사도에게 “와서 보아라”라고 하시며 믿음을 주셨고, 오늘 복음에서처럼 “나를 따라라”라는 한 마디로 그물을 버리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의 한 마디는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요?
정신과 의사 ‘다카하시 가즈미’의 『그래도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란 책이 있습니다.
다카하시 선생은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합니다.
많은 학자의 의견은 사람은 20세가 되면 생각의 변화가 멈춘다고 합니다.
생각의 변화란 ‘정체성’의 변화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이 부모와 형제, 학교, 사회로 확대되며 20세가 되면 성장을 멈춘다는 것입니다.
20세 이후의 삶은 사람의 변화라기보다는 20세 때 형성된 정체성이 성숙하는 과정이라 합니다.
그러나 공자와 같은 분들은 50세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되어 더욱 성장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옳을까요?
다카하시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우울증을 앓는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여러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이 평상시엔 괜찮은데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남편을 바꿔보려 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카하시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켰습니다.
사람은 변한다는 책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접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에게 술을 마시다가 남편이 죽어도 간섭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그 사람은 어차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결국 남편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뭉친 근육도 풀리고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여인의 남편도 술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사람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얼음이고, 어떤 사람은 물이고, 어떤 사람은 수증기입니다.
얼음이 얼음을 녹일 수 있을까요?
얼음은 얼음을 녹일 수 없고 자신 안에 품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먼저 알아야 자신이 얼음을 품을 수 있는 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물이 된다면 얼음을 녹여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경우는 나도 그 사람과 같은 수준이면서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냉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남편에 의해 병이 치유된 사례도 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 사랑을 받지 못한 여인은 온 세상이 겨울이었고 자신의 마음도 그랬습니다.
아마 그것이 냉병의 원인일 것입니다.
한여름에도 방에 난로를 켜 놓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땀띠가 나면서까지 아내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에 몸이 녹아내렸습니다.
한여름에도 치아를 부딪치는 추위를 느꼈던 그녀가 봄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는 이미 따뜻한 삶을 사는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같은 수준이라면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나 먼저 변하고 상대를 받아들이면 내 안에서 그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
얼음이 물이 되어도, 물이 수증기가 되어도 분자구조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성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열이 가해져야 합니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과 열, 이것이 물의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진리와 은총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만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모든 것은 얼음으로 변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과 진리를 입은 사람은 안드레아 사도처럼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는 말은 누군가의 마음을 녹여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얼음은 얼음을 녹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따뜻함만이
누군가의 마음을 녹일 힘이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