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6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3,10-17
은총이 무용지물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마침 열여덟 해를 앓는 허리가 굽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라고 하십니다.
직역하면 “병의 영”에서 풀려났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병의 영에서 풀려나게 하시는 방법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통해서입니다.
오직 ‘거룩한 영’만이 병의 영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통하여 세속-육신-마귀의 압제에서 인간을 해방해 하느님의 지배를 받는 하느님 나라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목격한 회당장은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병을 고치는 행위는 ‘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라며 그들의 위선을 꼬집으십니다.
안식일은 분명 사탄의 압제에서 인간을 풀어주시기 위해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오용하여 자기 영광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주님은 그 선물을 거두십니다.
만약 청년이 된 자녀에게 자동차를 선물해 주었는데 계속 과속과 신호 위반을 하며 사고를 낸다면 자녀를 위해 그 차를 우선 빼앗지 않겠습니까?
안식일의 선물을 올바로 사용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안식일에 사탄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도 빼앗깁니다.
혹시 우리도 은총을 사용하기에 합당하지 않으면서 계속 은총만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류시화’의 『인생 우화』는 폴란드의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우화로 엮은 책입니다.
우화의 형태로 세상에 존재하는데 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야기들입니다.
여기에 「해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근처의 상업 도시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마을 의회 대표 ‘베렉’이 그 도시 시청 벽에 걸린 해시계에 대해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시간의 기준이 될 해시계가 없어서 각자 조금씩 차이가 나는 시계들을 맞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회를 열어 해시계를 만들어 마을 중앙 광장에 설치하기로 결의합니다.
해시계가 완성되었을 때 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과 재정을 들여 만든 해시계가 진흙 웅덩이 속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또 해시계는 이미 그 마을의 자랑이 되었기에 혹시 다른 마을 사람들이 해시계가 그렇게 취급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이 두려웠습니다.
헤움 사람들은 다시 의회를 열어 해시계를 어떻게 보호하면 좋을지 상의하였습니다.
그들은 해시계 옆에 벽을 만들어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게 하고 지붕을 씌워 비를 맞지 않게 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또 막대한 재정을 들여 누가 보아도 자랑스러운 해시계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을 중앙에 세워진 어떤 도시에도 없는 해시계 박물관을 보며 내심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해시계는 은총입니다.
은총은 은총을 주시는 분의 목적에 의해 쓰여야 합니다.
그러나 은총을 받은 사람이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은총 주인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그 은총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주어진 은총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게 됩니다.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보시면 앞으로 은총을 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신 은총도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안식일의 은총을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려 했기 때문에 그 주인이 참 은총으로 오셨을 때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많은 은총을 받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교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은총의 목적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행해져야 하는 것이 ‘규칙적인 예배’입니다.
따라서 예배 때는 이미 주어진 은총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그 은총들을 통해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려야 할지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이때도 이것, 저것 다른 것만을 주님께 청한다면
이는 자기 영광만 추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지금 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주님 영광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분께서 알아서 합당한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니 미사 때 이것저것 청하는 것보다 먼저 받은 은총에 감사합시다.
이것이 다른 은총도 받을 방법입니다.
성당이 성황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책에 제가 볼 때는 유일하게 현명한 판단을 내린 사건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의회를 찾아와 집이 비좁아 죽겠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단칸방에 사는데 잠깐 들른 친척들이 아예 눌러앉겠다고 그 집에 짐을 푼 것입니다.
의회는 그러면 소를 한 마리 집에 들여놓으라고 합니다.
분명 의회가 현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믿은 그 사람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날 방도 좁은데 소 때문에 더 좁아졌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닭을 몇 마리 들여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그다음 날 또 하소연하였더니 닭을 쫓는 개 한 마리를 들여놓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의회는 개를 빼면 닭이 날아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은 닭을 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다음은 소를 빼라고 했습니다.
소똥 냄새로부터 해방되고 큰 공간이 생기자 그 사람은 크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렇게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똑같은 일이 전례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이 사람은 더 큰 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가진 것에 감사하면 그 가진 것을 더 많게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이것을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특별히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봉헌하며 주님을 찬미한다면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은총들을 그 목적대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졌다고 믿는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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