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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20 조회수 : 788

10월20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2,35-38 
 
근심, 우울, 무기력, 공황: 사막 위의 펭귄 

 
오늘 복음은 ‘깨어있음’이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라고 충고하십니다.  
 
당시 혼인 잔치는 일주일 동안 지속하기도 하였기에 종은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하다시피 하여 언제 올지 종잡을 수 없는 주인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깨어있음’을 넘어서서 ‘삶의 활력’에 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이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시중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은 종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자신이 따르는 뜻의 주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먹어야 힘이 나는데, 그 힘은 깨어 주인의 뜻을 따를 때
그 주인에게서만 온다는 것입니다. 
 
2019년 6월, 방송, 연극,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전미선(50)씨가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습니다.
출연 예정이었던 드라마도 있었고 송강호씨와 함께 한 영화 개봉도 앞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30년 차 중견 배우가 무엇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그녀는 우울증 치료중이었습니다.
당시 전미선의 소속사는 전미선의 사망 원인에 대해 “평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며 “충격과 비탄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대한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전미선씨는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싶다”,
“기억력이 없어질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우울할 이유도 없는데 남편과 자식까지 남겨두고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본인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고인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이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을 알아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중견 배우로서 이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이고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생명체가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삶의 에너지를 자신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처럼 믿게 합니다.
저절로 진화했으니 에너지도 저절로 충전되는 것처럼 믿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맘만 먹으면 우울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렇게 진화론을 믿는 일부 상담가들도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더 큰 무기력과 절망으로 이끌 수도 있음을 간과합니다. 
 
누군가가 무기력은 ‘사막 위의 펭귄’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펭귄인데 사막 위에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근심, 초조함의 증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음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삶의 에너지가 소진되지만, 음식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상담을 받으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음식을 발견할 것이라 말해줍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써서 살아갈 힘을 찾지만,
사막에서는 좀처럼 펭귄의 음식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만약 운 좋게 오아시스라도 발견을 하면 상담가는 “그것 보세요, 되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펭귄은 오아시스에서도 오래 살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충고는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 걷다 보면 탈출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향을 알려주지 않으면 사막을 헤매다 끝납니다.
혹은 적도만 걷다가 지쳐 쓰러집니다.  
 
펭귄은 온도가 낮은 쪽으로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먹이가 충분하고 살기에 적당한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사는 환경은 내가 따르는 ‘뜻’입니다.
나의 뜻일 수도 있고, 부모의 뜻일 수도 있고, 나라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누구의 뜻이든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의 자기 뜻만을 따른다면 모기나 기생충처럼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관계를 맺지 못하고 공동체에 속할 수도 없게 됩니다.  
 
만약 부모의 뜻만을 따른다면 착한 마마보이로 자랄 것입니다.
나라의 뜻만을 따른다면 애국자라 불릴 수도 있지만, 국수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에너지가 소진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따르는 뜻을 주는 그 대상이 자신에게 그 뜻을 이룰 양식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양식을 줍니다.
그 양식 안에 자기 뜻도 함께 넣어줍니다.
뜻이 내가 사는 환경이고 그 뜻을 주는 대상이 에너지도 줍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피조물을 배부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몸은 배를 불려도 영혼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영혼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순종해야 할 뜻은 나를 만든 이의 뜻이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인데 늑대의 뜻을 따른다면 늑대가 주는 양식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늑대 수준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러면 다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으로 끝없는 공허함과 배고픔을 느낍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부모의 뜻을 따르고 부모가 주는 양식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춘기를 넘으면 이제 새로운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 뜻을 주는 대상은 반드시 자신을 창조한 이여야 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충전시킬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을 만든 인간뿐이고,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운전할 수 있는 대상도 인간뿐입니다.
만든 대상을 만나지 못하면 뜻도 알지 못하고 에너지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기력과 우울증으로 겉으로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믿어도 속으로는 배고픔에 쓰러지고 맙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창조자를 만나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은 자신의 영혼도 만든 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영혼이 배고프면 영혼을 만든 분을 찾아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의 양식이 충분한 곳에 살게 됩니다.
그분의 뜻을 따를 때 펭귄은 사막에서 벗어나 남극에 머물게 됩니다.  
 
뜻을 바꾸어야 먹이가 풍부한 환경에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르는 이에게 당신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이가 50대가 되면 지금까지 추구해 온 모든 것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옵니다.
많이 이뤄놨어도 배가 고픕니다.  
 
그러면 사막에서 펭귄이 먹이를 찾는 것처럼 또 고생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음식을 주지 못하는 누군가의 뜻을 따르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따르는 그 뜻을 바꾸지 않으면 사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이 지배하게 만듭시다.
그러면 내가 하느님 나라에 있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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