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2,13-21
비우려면 가져야 하는 믿음: 내 것 = 근심
오늘 복음에서 어떤 억울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형이 모든 유산을 가로챈 것입니다.
아마 형도 예수님을 아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예수님께 형을 좀 설득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이 청원에는 잘못된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라고 하시며, 그런 청을 하는 동생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탐욕을 없애 영혼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탐욕은 모든 인간들 안에 원죄로 남게 되었고, 그 탐욕이 모든 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콜로 3,5)라고 말하고,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라고 말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분이 돈에 대해 기도를 해 달라고 청하십니다.
물론 딱한 사정들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 그런 기도를 드릴 때 들어주실지 항상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기껏해야 돈이나 벌어다 주는 그런 분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도 그런 기도의 청을 받을 때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친애하는 자매들이여, 우리가 할 일은 세속의 그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면서 연금이나 재물을 하느님께 빌어달라고 할 때, 나는 우습다가도 곧 슬퍼지곤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모든 것을 박차버릴 수 있게 주님께 빌었으면 싶은 것입니다.
그들의 뜻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경우, 하느님께서 그런 일에는 결코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정성을 보아 나는 응하여 줍니다.”(『완덕의 길』 1장)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나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욕구를 없애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자꾸 그런 것을 청하면 구원과 멀어지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뺄셈을 하며 살아야지, 덧셈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청하는 마음 안에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는 잘못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먹고 입고 잘 것은 있어야 하지만, 생존 이상의 것은 더 가질수록 더 근심스럽습니다.
2017년 3월 27일, 미국 뉴욕시 맨해튼 한 호텔 24층 객실에서 50대 남자가 뛰어내려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찰스 머피’였습니다.
찰스 머피는 월가의 소위 잘나가는 투자 관리자로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연달아 성공시켜 이름을 날리며 백만장자 대열에 들어선 그야말로 성공의 신화가 된 사람입니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우울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많이 걸릴 것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 3구가 인구 10만 명 당 우울증 치료 건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물론 돈이 있어서 그만큼 많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있겠으나 돈이 있다고 기쁘지 않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의 억만장자 아돌프 메르클레(74)가 2009년 1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일도 있습니다.
그는 독일 내 5위의 부자이며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에선 94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지구적 금융위기로 자신의 피땀으로 일군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논평에 보면 그가 모든 것을 처분하고 빚을 갚고 나도 1조 원 정도의 돈이 남았을 것이라는 글도 있었습니다.
통장에 1조 원이 남아도 자살하게 만드는 것이 재물입니다.
많이 소유하면 많이 행복하다는 헛된 가르침을 아이 때부터 치워버려야 합니다.
많이 가지면 그만큼 근심이 늘어납니다.
이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책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이 많으면 무엇을 입어야 할지 근심하게 되고, 차가 많으면 어떤 차를 타야 할지 근심하게 됩니다.
애인이 많아도 어떤 애인과 결혼해야 할지 근심이고
가진 책이 많아도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근심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은
한 가지 옷과 신발만 입고 신었습니다.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이유는 많이 외롭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공허함을 물질로라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느낌으로 자란 아이들은 커서 안 쓰는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심하면 병이 되어 집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기도 합니다.
걱정이 많아서 물건이 많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물건이 많아서 걱정이 많아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둘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기도 하였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뺄셈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많이 비워야 채워질 사랑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탐욕을 경계하라 하시며 곳간을 새로 짓는 부자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곳간만 짓다가 구원을 못 받는 사람입니다.
집에 수납장이 있으면 반드시 채워집니다. 쓸모없는 것으로라도 채워집니다.
사실 채워지지 않아도 걱정이고 채워져도 걱정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십일조’입니다.
십분의 일을 주님께 봉헌하며 나머지 모든 것도 주님 것이라고 고백하고 내 것처럼 여기지 않으면 그것들이 더는 근심거리가 되지 않게 됩니다.
가진 것으로 친구를 사귀십시오.
재물이 아니라 관계가 행복입니다.
그러기 위해 재물을 내 것이 아니라 주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근심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 것은 곧 근심거리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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