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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0-18 조회수 : 667

동행과 선교는 동의어 
 
 
오늘은 선교 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말합니다. 
기쁜 소식을 지니고 있으니 그 사람은 기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좌로 있을 때 저는 본당 신자 할머니에게 선교를 받았었습니다. 
본당 보좌 신부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만나는 사람마다 성당에 다니라고 선교하시던 그분의 발은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예전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선교가 몸에 배어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해야 할 소명 하나만 말하라면 그것은 선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복음 선포의 소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며 앞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고 하십니다. 
복음선포를 위해 파견하시는 제자들 앞에서 왜 당신의 권한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복음선포를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선교의 힘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십니다. 
복음선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제에게까지 선교하려고 하셨던 그분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계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동행하기를 허락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저절로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십니다. 
 
얼마 전에 카이스트에 766억 원을 기부한 ‘이수영 회장’(83)이 화재였습니다. 
이 회장은 처음에 기자로 활동하였었습니다. 
1976년도에 그녀는 이탈리아로 관민 합동 경제사절단 수행 기자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카메라는 아사히 펜탁스였고, 그때 자기 옆으로 일본 관광객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옷을 여며 카메라를 감추었습니다. 
한국인이 일본 카메라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한이 되어 한국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해 달라고 카이스트에 재산을 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기부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부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이 회장은 기부한다고 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돈을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됩니다. 
같은 서울대 법대 출신 첫사랑과 81세에 한 가정을 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며 이 회장은 암을 앓게 되었습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때에 신랑이 말을 했습니다. 
 
“아니 왜 유증을 한다고 그러고서는 안 해?”
이 말에 더는 머뭇거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TV에서 카이스트 총장이 연설하는 것을 듣고 바로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기부는 이 회장이 한 것이고 이 회장의 돈으로 한 것이지만 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준 것은 신랑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신랑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반대했다면 그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우리 옆에서 선교하도록 우리를 부추기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그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선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선교하고 있다면 분명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시는 것이고, 선교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신 사랑의 법입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은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을 구해주는 것은 밥을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보다 훨씬 큰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밥을 주어야 영원한 생명도 관심을 두게 합니다. 
예수님과의 동행, 이것이 곧 선교입니다. 
 
‘유퀴즈온더블럭’에 현대 사장보다 연봉이 높은 판매 영업부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그의 연봉은 10억 2천 7백만 원입니다. 
게다가 판매 실적에 따라 성과보수도 받습니다. 
그는 17년 연속 우리나라 자동차의 판매왕을 차지하였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가 평생 13,001대를 팔았는데, 이분은 12,705대를 팔았습니다. 
아직 50대 중반이 안 되었으니 이 기록은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특별한 판매 전략이 있느냐고 물으니 특별한 게 없다고 대답합니다. 
누구나 다 쓰는 노트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본 것은 이분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이렇게 충실하게 약속을 지키니 그 얼굴에 신뢰심이 발산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의 언변이나 상술보다 그 얼굴에서 풍기는 것 때문에 더 신뢰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 신뢰가 얼굴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뢰가 가는 삶이 모습에서 신뢰가 배어 나오게 만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믿고 차를 사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났다면 그렇게 일어나도록 옆에서 부추기던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만 
자신을 이기는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선교도 이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면 죄의 삶을 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외모에서 신뢰가 풍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굳이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보며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당신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내가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그 모습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이렇게 멀리 나가기보다는 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동행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이에 ‘동행’과 ‘선교’는 결국 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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