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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08 조회수 : 662

10월8일 [연중 제 27주간 목요일] 
 
갈라티아 3. 1-5
루카 11,5-13 
 
 
어제 주님의 기도를 말씀드리며, 주님의 기도는 진리를 담고 있어서  ‘나침반’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자주 바치는 사람은 인생의 방향을 잃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향만 안다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 
그 방향으로 나아갈 힘도 있어야 합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주는 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계명을 지킬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실상 파라오를 사랑하며 십계명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혀있으며 집의 방향을 안다고 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주신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려 합니다. 
우리 힘으로 지키려 하지 않고 그분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가 항상 청원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대로 나아갈 권한과 힘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저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나라물고기’님의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6년 전 한국에 들어와 건강 검진 4시간 마치고 어머님 산소를 이장 신청하러 갔습니다. 
신청 도중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초음파상 간암이 보이니 내일 와서 CT 촬영하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여주는데 제가 보아도 큰 종양이 보이고 의사는 90% 간암이라 확신했습니다. 
 
저는 올 것이 이제 왔다고 생각했지요. 
의사를 만나고 나오며 마음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제가 간암이랍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감사 찬미 기도하면 늘 그렇듯이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져요. 
저는 간염이 있었고 동생 둘이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죽었으니 이제 내 차례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CT 찍고서 일단 어머님 산소 이장 끝내고 보자. 할 수 있는 자녀는 저밖에 없으니까. 
간암으로 수술을 한 동생은 2년 살고, 아무것도 안 한 동생은 7개월 살았으니 1개월 후에 예정된 아들 결혼을 보고 죽음을 준비하리라 생각했어요. 
아버님 옆으로 이장 다 마치고 난 후 다음날 CT 결과는 간암은 아니었어요.” 
 
이 일이 6년 전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분은 간암 선고를 듣고 주님의 기도를 바친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감사와 사랑’으로 종합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솟는 감정이 아니란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불만의 감옥으로부터 해방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기도에서 제시하는 방향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방향과 함께 나아갈 힘과 자유를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바치라는 의미로 이런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가난하여 벗에게 내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를 찾아가 빵 세 개를 청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미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었으니 괴롭히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벗을 위해 그는 계속 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세속적인 것, 육적인 것, 세속적 명예를 청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그것들을 이길 힘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이길 힘을 주님의 기도로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들어오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는 자기를 이기고 어느 상황에서건 감사와 찬미, 사랑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힘으로 주님을 한 발짝 더 닮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어떤 사람이 살인죄로 복용 중인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서 동생을 사면할 임금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생에게 묻습니다.
“만약 자유를 얻는다면 나가서 무엇을 하고 싶니?”
“나를 감옥에 처넣은 판사부터 죽여야지!”
그는 밖으로 나오며 사면권을 찢어버렸습니다. 
 
사면권은 성령과 같습니다. 
그 성령은 내가 그 성령을 주시는 분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의도가 있는지에 따라 주어지기도 하고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성령의 오심이 합당한 의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기도를 통해 성령을 청하면 성령을 주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성령은 세속-육신-마귀, 즉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면권입니다.  
 
이 빵 세 덩어리를 끊임없이 청하면 우리는 우리의 감옥인 자아로부터 탈출한 참 자유인이 됩니다. 
참 자유인이 되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령의 열매인 감사와 사랑이 멈추지 않고 솟아나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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