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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05 조회수 : 656

10월5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0,25-37 
 
계명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 이유 

 
오늘 복음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제와 레위인은 종교적 행위에는 충실했지만, 계명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계명을 안다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계명이 때 되면 식사하거나 잠을 자야 하는 것처럼 완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도와주지 않고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 당연히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명이 나를 그렇게 완전히 지배하게 만들려면
그 계명을 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왠지 나를 희생시키고 고생시키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은 그러한 계명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 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튜브 동영상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에서는 삶에 힘겨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꿈을 잃은 사회 초년생,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는 취업 준비생, 승무원 포기한 배우 지망생, 고3 수험생 등이었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들입니다. 
 
“하루 수면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일주일에 몇 번 사람들과 어울리나요?”,
“모든 일이 힘들게 느껴지나요?”,
“꿈이 있나요?”,
“하루에 몇 번 소리 내 웃나요?” 
 
그리고 뒷장에는 같은 질문 앞에 ‘어린 시절에’란 단어를 붙였습니다.
어린 시절 수면시간은 얼마였나요? 어린 시절 몇 번 소리 내어 웃어보았나요? 등입니다.
당연히 어린 시절이 앞길이 막막한 청년들보다 훨씬 행복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은 어린 시절 행복한 이유는 다른 것은 신경 안 쓰고 공부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공부가 쉽습니까? 저는 공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좀 그만하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제가 되었는데 또 공부하라고 유학 가라고 했을 때는 정말 순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린이가 행복한 이유는 공부만 하면 되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불안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막막한 것입니다.
재빠르게 버스를 잡아타긴 했는데 이것이 집으로 가는 것인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인지 모를 때의 불안한 마음과 비슷할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있을 때 그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합니다. 
 
‘비벡 H 머시’의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라는 책은 ‘외로움’과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복권 당첨자가 머시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복권 당첨된 것은 저에게 저주가 되었어요.”
“아니, 왜요?”
“복권 당첨되기 전에는 직장 동료, 친구와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부자 동네로 이사 오고 나니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집에 갇혀있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사람은 돈보다 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어딘가에 속해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술자리에 있으면 술을 마시면 되고 직장에 있으면 일을 하면 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며 불안에 떨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못하면 마치 방전된 스마트폰처럼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같은 책에 이런 예도 나옵니다.
어떤 전직 조직폭력배가 말했습니다. 
 
“저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모두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평안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었습니다.
물론 세상에 악한 일이기는 하였지만요.” 
 
나의 행동들이 나의 자유의지로 행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인간에게 자라지 않으면 인간다운 행동이 전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늑대에게 자라면 늑대의 행동을 하고 인간에게 자라면 인간의 행동을 합니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면 기생충이나 모기처럼 생존을 위해 먹기만 합니다.
이 또한 자아라는 것에 속해있기에 그의 뜻을 따라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악한 일을 하면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외로움과 불안함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우리가 명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런데 그 계명은 내가 그 계명을 주시는 분에게 감사할 때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자녀가 감사하지 못하면 아무리 부모라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해야 할 유일한 것은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직폭력배도 그 조직에 고마워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주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계명이 그 사람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조직폭력배는 나중에 그 조직에 감사를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주는 모든 계명은 다 그 사람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계명을 주는 어떠한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배하는 계명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의 상징인데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쓰러져가는 인류를
구원하지 않으실 수 없으셔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속해있었고 아버지의 계명이 그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모르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으로 쓰여야 행복하지 망치로 쓰이면 결국 또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은 하느님 모습대로 사랑해야만 행복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따를 수 있는 계명을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이 나를 지배하게 만들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의 계명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오늘 복음의 사제와 레위인처럼 그 사람들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계명을 주시는 분에게 속하는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명만 안다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주신 분을 사랑할 수 있어야 지킬 수 있기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당신 몸을 양식으로 내어주심으로써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나를 지배하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을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분의 계명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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