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자녀에게 감사를 교육하는 장이다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축제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함께 모이는 것도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이지 못하고 사람들이 더 많은 곳에 놀러 가는 것도 썩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큰 명절을 잘 지키며 힘을 얻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축제를 지내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축제라도 어떤 때는 뒤끝이 좋지 않고, 어떤 때는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뒤끝이 좋은 축제를 지향해야 합니다.
뒤끝이 좋지 않은 축제 안에는 항상 인간의 욕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46년 미국의 한 의과대학 2학년생 ‘모턴’은 실험을 하던 중 강력한 마취기능을 가진 에테르라는 약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취 없이 수술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에테르의 발견은 외과 수술 역사상 획기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해 낸 사람은 축제를 즐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 에테르 특허를 신청하려 했던 모턴은 그의 지도교수인 ‘웰치’와 그에게 실험실을 내어준 화학과 교수 ‘잭슨’에게 저지를 당했습니다.
서로 자신의 이름이 의학 역사에 기록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명은 결국 법정 싸움까지 갔고 축제가 되어야 했던 이 발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잭슨은 정신병에 걸렸고, 웰치는 사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모턴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마취시키는 물질을 개발해 낸 그들이 명예욕으로 곪은 정신은 마취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참조: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쑤쑤, 유튜브 채널: 책읽는 다락방]
아무리 축젯날이 되어도 인간의 욕심이 개입하면 축제가 비극으로 끝납니다.
물론 장례식은 축제는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어떤 장례식에서는 돈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모습은 아닌듯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라고 말합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듯이,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멀어지고 결국 고통으로 끝나고 맙니다.
아마 모든 것이 가장 풍성할 때 추수감사절이나 추석 명절이 있는 이유는 돈에 대한 욕심이 가장 줄어드는 풍요의 시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라질은 삼바축제로 엄청난 관광소득을 올리는 나라입니다.
매년 2월에 열리는 이 축제에 약 4천만 명이 몰립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축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 2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확산할 위험에 있었습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축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는 무렵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현재 확진자가 470만 명을 넘었습니다.
사망자도 1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코로나는 그저 감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도 걸리고 가족도 걸렸습니다.
그런데도 마스크 없이 사람들을 만나는 등 거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겉만 보고 이렇게 말해서는 온전한 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삼바 축제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라는 명확한 근거도 없습니다.
다만 그런 축제를 지내는 정신이 코로나 확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제가 오염되었음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보통 삼바축제라고 하는 ‘카니발’은 ‘카르네 발레’(Carne val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카르네 발레는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입니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 전에 당분간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그 전에 충분히 먹어두려고 하는
가톨릭 전통이 축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로 시작된 이 축제가 그 정신은 사라지고 돈과 쾌락의 축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뒤끝이 좋지는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명절과 축제의 참된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 전통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전통에서 ‘축제’는 자신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해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그 기억을 자손들에게 전해주는 ‘교육’적인 차원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식 때마다 자녀들이 그 예식은 왜 행하는 것이냐고 부모에게 묻고, 부모는 하느님께서 이래저래서 그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이런 예식을 행하는 것이라고 자녀를 교육합니다.
교육하면서도 부모 자신도 더 배우고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2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면서도 이런 축제 기간을 중요시 여기며 후대에도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잊지 않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 없이 살면서도 축제를 통해 하느님은 감사한 분이심을 자녀들에게 교육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이 있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설과 추석이라는 좋은 명절이 있습니다.
설에는 세배하며 감사하고 추석에는 풍요로움이 있게 해 준 조상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왜 그런 제사를 지내야 하고 성묘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하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부모와 조상들의 덕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제주도에 30만 명이 몰린다고 합니다.
제주도 주민은 자녀들에게도 이번 명절엔 오지 말라고 했는데, 30만 명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걱정이 많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전통의 축제 정신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명절이 어떤 교육보다 자녀들에게 큰 교육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부모를 공경하고 물려받은 것에 감사하는 것을 여러 번의 명절을 거치며 배워왔던 것 같습니다.
놀러 가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이런 특별한 때야만 가능합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부모도 자신들도 없었음을 깨닫게 하십시오.
그 감사가 진정한 예배로 이루어질 때, 명절은 기쁘게 끝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명절이 자녀에게 감사를 교육하는 장으로 길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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