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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18 조회수 : 561

9월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8,1-3 
 
예루살렘 부인들! 
 
오늘 복음엔 소위 ‘예루살렘 부인들’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부인들이란 예수님께서 골고타를 향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눈물 흘리며 통곡하던 여인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녀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를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신분을 알 수 없는 수산나라고 하는 여인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 주신 여인입니다. 유명한 죄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요안나는 헤로데의 집사였습니다. 권력층이었다는 뜻입니다.
수산나는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라는 것을 보면 모두 재력이 어느 정도는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제들에게도 예루살렘 부인들이 있습니다.
사제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여인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도움’이 되라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 도움은 나중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움인 척 하면서 오히려 방해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부류가 “안 돼”, “틀렸어”, “못 해”, “그걸 하겠다고? 교만하네”라고 말하며 기를 꺾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도움을 주는 듯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자신의 제자로 만들려는 위선자들입니다.
이들을 가까이하면 이용만 당할 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올바른 길을 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스승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다음 부류는 “내가 도와줄게”, “내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도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제를 다른 사제와 비교하며 자신이 도와주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은 그 사제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모두가 사제를 칭찬해주니까 사제가 교만해지고 권위적으로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자신처럼 사제들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없어도 됩니다.
사람은 비난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뀝니다. 
 
참다운 도움은 ‘예루살렘 부인들’입니다.
조건 없는 신뢰와 도움을 주는 이들입니다.
그녀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실 때, “그러길래, 내 말을 좀 듣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확신과 어머니와 같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주는 것은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무조건 믿어주니까 덕분에 힘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조건 믿어주다가 사제가 교만해지고, 잘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면 많은 여자가 그저 “예수님의 일행”이라고 하여 시중을 들었다고 하지, 가려가며 시중들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는 무조건 아들을 믿고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그것 자체가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비뚤어졌어도 올바른 길을 찾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돕는 여인들이 참으로 예루살렘 여인들입니다. 
 
제가 영성관에 온 지도 벌써 5년째가 되어갑니다.
처음 올 때는 재정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시골에 있어서 교통편이 좋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잘 운영해도 적자 안 날 정도로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식복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정을 줄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식복사 한 분을 고용하면 일 년에 2천만 원 정도는 나가야 하는데, 빠듯한 상황 속에서 사제 한 명을 위해 그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자매님 3분을 일주일에 하루만 함께 와서 좀 도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성지순례 갈 때 저희 부모님에게 아주 잘했던 분들이어서 그렇게 청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한 분은 청소, 한 분은 빨래, 한 분은 맛있는 집밥을 먹게 해 주셨습니다.
5년 가까이 매주 빠지지 않고 와서 도와주셨습니다.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정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이야기도 하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미사도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제가 하는 일을 모두 긍정해주시지 어떤 방향을 제시하거나 삶을 지적하지 않으십니다.
당신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일을 다 하고 나서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돌아가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아마 그 여인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따듯함을 느끼고 힘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재산으로만 제자들을 도왔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들이 줄 수 없는 무언가가 여인들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무조건적 사랑과 신뢰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여인들의 그러한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의 사목자들도 그런 도움이 필요할 것은 분명합니다. 
 
주교님도 도와주시고 동료 사제들도 당연히 제가 여기 있는 동안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정보와 충고를 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큰 사고 없이 영성관 생활이 마무리된다면 저는 그 공로를 무엇보다
사제관에서 봉사하신 이 세 분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처럼 믿고 사랑해주고 도와주신 많은 예루살렘 형제자매들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골고타로 올라가실 때는 도망가버린 제자들에 비해 그 여인들에게서 더 큰 힘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도움으로 하와를 창조하셨듯이 예루살렘 부인들은 제자들과 버금가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필수적인 도움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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