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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15 조회수 : 635

9월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히브리 5,7-9
요한 19,25-27 
 
고통은 의미 있다고 믿을 때만 의미 있다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어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지는 기념일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모 마리아가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고통이었는데 그것이 무슨 공로가 되느냐고 따집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아래 있는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에 어머니가 되기 위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아들이 공공의 적으로 몰려 수난과 죽임을 당하는 것 때문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교회라는 새로운 자녀를 낳는 데 사용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마리아들도 십자가 아래 있었지만 성모님 고통만이 교회의 어머니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통에 당신 고통을 합칠 줄 아는 어머니의 공로 때문입니다.  
 
자녀를 낳을 때 어머니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무슨 고통인지 그 의미를 모른다면 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아기를 낳는 것도 동시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그 의미를 알 때야만 창조의 도구가 됩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당하시는 고통이 교회를 낳는 창조사업을 위해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고통임을 아셨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간호사들이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침대에 누가 시체의 다리를 잘라서 가져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왼쪽 다리의 신경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원 치료 중이었는데 그날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의 다리가 만져진 것입니다.
깜짝 놀라 그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침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다리는 자기 다리였습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당혹스러워하는 그 사람에게
“그럼 당신의 왼쪽 다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안색이 창백해지며 “모르겠어요. 전혀 모르겠어요. 사라져버렸어요. 그냥 없어져 버렸다고요.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는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왼발로 오는 마비 증상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통이 자기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통이 있는 자기 다리도 함께 집어 던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고통을 거부하셨다면, 그 고통을 피하려 하셨다면 십자가 밑에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은 들으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고통의 의미를 아셨기 때문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같은 책에 「수평으로」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93세 노인의 사례가 나옵니다.
그분은 걸을 때 몸이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자칫 넘어질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달팽이관의 수평을 유지하는 부분에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그 노인에게 그렇게 몸이 기울어져서 걷는다는 것을 알아듣게 설득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자신은 정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영상을 찍어 보여주자 수긍하였습니다.
만약 위의 사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이렇게 걷다가 죽을래요.”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목수였다며 어떠한 건축물이 평평한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수준기’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나무나 콘크리트 위에 그 수준기를 놓으면 그 건축물이 기울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 머리에 있는 그 수준기가 고장 났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평평한 선이 있는 안경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안경을 통해 밖을 볼 때 평평한 선이 그어있으면 자신이 그것을 보며 비뚜로 걷는지 올바로 걷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경에다 그 선을 만들었더니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경 앞으로 조금 나오게 그 작은 수준기를 달았습니다.
수준기를 보랴, 앞을 보랴 처음엔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는 능숙하게 걸으며 자신의 자세를 꼿꼿이 피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안경은 여러 어려움으로 수평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발명품이 되었습니다. 
 
고통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90세가 넘어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창조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나에게서 던져내려고만 한다면 결국 그 고통과 하나가 된 나 자신도 침대 밖으로 던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은 내가 유익하고 의미 있어 잘 받아들일 때만 나에게 그 의미를 주고 창조의 계기가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당신께 오는 모든 고통을 의미 있게 여겨서 그것을 교회를 낳는 새로운 창조의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당연히 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위해 주시는 의미 있는 고통임을 믿는 것입니다.
고통은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열매를 선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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