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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9-12 조회수 : 555

9월12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코린토 10,14-22
루카 6,43-49 
 
꽃이 될 것인가, 열매가 될 것인가? 
 
 
한국의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58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OECD 평균 18명보다 훨씬 높고 심지어 2위인 35명보다도 압도적으로 앞선 1위입니다. 
노인 자살의 주된 원인으로는 경제적, 정서적 독립이 부족한 것을 꼽습니다. 
 
그런데 가난하면 다 자살해야 할까요? 
사실 코로나가 발생하고 자살률이 줄었다고 합니다. 
힘들수록 더 어떠한 목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편안해지면 오히려 자살률이 증가할 것이라 합니다. 
사람은 힘이 좀 들어야 삶의 에너지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켈리 맥고니걸의 『움직임의 힘』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더는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그는 자살하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데 땀이나 실컷 흘려보고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음 날 죽기로 하고 오늘은 헬스장을 찾았습니다. 
벤치프레스를 했는데 80킬로가량 들 수 있었습니다. 
땀을 쭉 빼고 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몇 킬로까지 들 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목표가 생기니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5년 뒤 그는 140킬로까지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표란 ‘고통’이란 것을 수반합니다. 
따라서 내가 어떠한 목표를 위해 받을 고통을 거부한다면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목표를 위해 고통을 참아 받는 능력을 키울 때 삶의 활력이 넘칩니다. 
 
쥐를 가지고 한 실험입니다. 
꼬리에 전선을 연결해서 수시로 전기 자극을 줍니다. 
쥐는 언제 자극이 올지 모르고 자극이 와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쥐는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소위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쥐를 물이 가득한 양동이에 넣으면 헤엄을 치지 않습니다. 
가만히 물에 가라앉는 익사를 선택합니다. 
 
다른 그룹의 쥐는 전기 자극을 주는 것은 같지만 
그 쥐가 옆에 있는 쳇바퀴에 올라타 돌리면 자극을 중단합니다. 
자극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이 쥐는 그 자극을 피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땀을 흘려 고통을 감내하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그룹의 쥐는 절대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이 가득한 양동이에 넣어도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헤엄을 칩니다. 
 
사람이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더는 살아봐야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망감은 꽃이 되려는 목표로 살았기 때문에 올 수 있습니다.  
 
꽃은 화려할 때는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꽃은 시듭니다. 
그러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자살하는 일부 노인들은 어쩌면 꽃이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꽃이 아니라 열매가 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만약 그 모습이 꽃과 같다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기대하십니까? 
타볼산에서 변모하시는 멋진 모습입니까, 아니면 양식이 되어 오시는 모습입니까?  
 
아무리 예쁜 꽃밭이 있더라도 
굶은 사람에겐 배를 채울 수 있는 과일이 필요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 젖을 만지다가 가끔은 어머니 팔뚝을 물기도 했었습니다. 
왠지 먹고 싶었습니다. 식인종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런데 어른들도 아기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손과 발을 입에 넣고 깨물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부모가 아기들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쁜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꽃은 한계가 있습니다. 열매를 원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먹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말과 행동’임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라고 하시는 것은 ‘말’에 관련된 것이고,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라고 하시는 것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남을 먹일 수 있습니다. 
 
내가 좋은 나무가 되려면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당신의 뜻이 행동으로 드러나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반면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신앙의 목적을 미사나 기도에 둡니다. 
미사하고 기도하면 구원받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씀은 받아들이는 시간이고 
그 말씀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연습해야 하는 것은 고통을 참아내는 일입니다. 
이것을 할 수 없으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왜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셨겠습니까? 
당신이 식욕이 강하면 양식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먹는 사람이 되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꽃이 아니라 열매가 되려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달라기를 하는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힘든데 쾌감이 찾아오는 느낌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목적으로 성장하지 꽃을 목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크나큰 고통입니다. 
잘 다져진 반석이란 아마 고통을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니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먹히는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평소에 조금 힘든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하면 더 좋습니다.  
 
꽃에서 열매가 되는 중간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내가 열매가 되어 누군가에게 계속 먹힌다면 
그 사람은 삶의 의욕을 잃을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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