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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11 조회수 : 565

9월11일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코린토 9,16-19.22ㄴ-27
루카 6,39-42 
 
리더보다 스승 

오늘 복음도 원수까지 사랑하고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리더’가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라면 눈먼 인도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그러시면서 리더는 먼저 ‘스승’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모범을 보이며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스승은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리더는 남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먼저 자기를 다스릴 수 없다면 리더가 아니라 폭군이 됩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이런 자비롭기만 한 리더가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스승이면서 리더로서 제자들의 단점을 다 품어 안으셨습니다.
특별히 가리옷 유다를 더 품어 안으셨는데, 심지어 다른 제자들은 그가 배신하러 나갈 때도 그를 의심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요한복음에 의하면 유다는 ‘도둑’이었는데도, 그를 ‘재정 담당자’로 세우셨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입니다.
요즘 누가 도둑놈에게 자기 회사의 재정 담당을 맡기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이 참으로 ‘스승다운 리더의 모습’이었습니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인 것은 비록 사도세자만의 책임은 아니었습니다. 영조의 지나친 기대에 사도세자가 지쳐있었고, 거기다가
사도세자의 정책이 기득권인 노론세력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론은 사도세자가 왕이 되기를 원치 않아 틈만 나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 정조로 책봉되자 그는 첫 마디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세력들은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않게 방해를 해 왔었습니다.
역적의 자식은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조는 노론에게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았습니다. 
 
정조는 임금이기 전에 자기를 다스리는 스승이기를 원했습니다.
활 솜씨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학문에서도 모두 그에게서 배워야 했습니다.
처음엔 정조가 경연을 만들어 신하들로부터 배우려고 했으나, 하다가 보니 자신의 학문을 따라올 자가 없어서 왕이 신하들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정약용과 같은 인재는 학문은 뛰어났으나 체력이 약하여 일주일 동안 가두어 놓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습시켜 합격하면 내보내 주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좋은 머리도 소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모두 스승이 될 수 있었어도 아버지의 원수들을 해치지 않고 함께 정치를 해나가는 것은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화병으로 머리에 온통 부스럼이 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절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영조와 노론의 결정이 옳았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1786년 정조 10년에 왕세자였던 큰아들 문효세자가 죽고 문효세자를 낳은 의빈 성씨가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년 뒤 이 둘을 독살한 사람이 무종 구선복임이 밝혀졌습니다.
정조의 후계를 막기 위해 그런 일을 벌였던 것입니다. 
 
정조는 구선복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뒤주에 들어갈 때 네가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그때 내가 너를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 가족들을 다시 죽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들을 내색 없이 참아내며 함께 정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스승은 분노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원수까지도 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조는 뛰어난 리더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스승이 되고자 했습니다. 
 
한 공동체나 단체에서 리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치’입니다. 단합이 잘 되는 회사가 성적도 좋습니다.
그런데 일치의 기본은 ‘소통’입니다.
소통이 잘 돼야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이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권위주의입니다.
소위 군대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1997년 대한항공기가 괌에서 추락한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기장과 기장 간의 소통 부재가 그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기장이 기장에게 제 때에 경고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군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국제선 조종실에서는 영어로만 대화할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1990년부터 10여 년간 대한항공은 7건의 항공사고를 일으켰는데, 그 이후 사고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스승이 아닌 리더는 힘으로 내리누릅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소통이 안 되고 분열됩니다.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비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리더여야 합니다.  
 
자기 눈의 들보 먼저 보아야 합니다.
항상 밑의 사람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워야 합니다.
리더는 스승이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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